5만원으로 설 차례상 장보기...성균관 '간소화 차례상'보다 초라하지만 구색은 맞춰

  • 서민지,이남영,이동현,윤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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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9 06:51  |  수정 2023-01-19 07:08  |  발행일 2023-01-19 제3면
영남일보 사회부 세 기자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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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2시쯤 영남일보 취재진이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과일을 구매한 뒤 현금을 건네고 있다.(위쪽) 취재진이 서문시장에서 5만원으로 구입한 차례용품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5만원? 고기랑 과일 몇 개 못 사고 다 끝나겠다." 전통시장에서 차례상에 올릴 장을 보고 있던 한 시민이 '5만원 장보기'에 나선 영남일보 기자에게 급등한 물가 소식을 전하며 건넨 말이다. "아이고! 명절 대목이라도 예전 같지가 않아요." 이는 대구 서문시장 한 상인이 영남일보 기자에게 내뱉은 푸념이다. 매년 듣는 한숨인데도 올해는 유난히 짧아졌다. 마치 포기한 듯한 표정이다. 영남일보 사회부 기자 3명이 18일 민족 대명절 설을 맞아 대구 서문시장, 칠성시장, 서남신시장을 찾아 '5만원으로 설 차례상 장보기'에 도전했다. 예산 규모는 5만원. 각자 대구행복페이와 제로페이, 온누리상품권 등으로 결제했다. 구입 품목은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마련한 설 차례상을 기준으로 삼았다.

서문·칠성·서남신시장 3곳서
턱없이 부족한 돈에 낱개 구입
고물가 여파 절실하게 와닿아

코로나 전보다 못한 명절대목
상인들 "손님이 안늘어" 한숨
덤 담아주는 시장 인심은 여전

온누리상품권으로 구매 가능
노점상 대부분은 현금만 취급
행복·제로페이 사용에도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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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차례상 간소화 목소리

이날 오전 9시쯤 칠성시장을 찾은 이동현 기자는 떡국떡(1만원), 밤(5천원), 사과 5개(1만원), 대형 북어포와 마른오징어(2만원), 술(8천500원) 등 5개 품목 6개 재료를 구입했다. 총 5만3천500원으로 3천500원을 초과했다. 나물은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구이류는 개당 금액이 큰 탓에 살 수 없었다. 오후 1시30분쯤 서문시장에서 이남영 기자는 5만원으로 사과 3개(1만원), 감 1줄(6천원), 배 한 개(3천원), 밤(4천원), 대추(3천원), 조기(1만7천원), 포(5천원), 콩나물(2천원) 등 8개 품목 장보기를 마쳤다. 성균관 간소화 차례상 기준 중 김치를 포로 대체했다. 술은 예산 부족으로 살 수 없었다.

서민지 기자는 오후 4시쯤 서남신시장에 도착했다. 서 기자는 역시 같은 금액으로 떡국떡(5천원), 조기(1만3천원), 황태포(1만원), 대추(3천원), 밤(4천원), 도라지와 고사리(1만원), 차례용 사과 한 개(5천원) 등 7개 품목 8개 재료를 구매했다. 예산 한계로 인해 대추와 밤을 과일 종류로 분류하고 김치를 황태포로 대체하고 보니 술과 과일 한 종류를 살 수 없었다. 장보기 마지막 장소로 과일 상점에 들렀지만 차례용 배는 3천~6천원선, 감은 5천~6천원선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사과 한 개만 산 채 돌아섰다.

3명의 기자는 5만원을 한도로 잡았을 때 어느 정도 차례상 가짓수는 갖출 수 있지만 양은 다소 초라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성균관이 제시한 차례상을 빈틈없이 채우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날 시장에 들른 손님들은 비상 걸린 '차례상 물가'에 힘듦을 호소하는 한편 취재진에게 격려(?)를 보내기도 했다. 서문시장에서 차례용품을 구매했다는 박모(73)씨는 "설날 차례상을 차리기 위해 시장에서 문어, 오징어, 명태, 유과, 감, 대추를 구매하는 데도 10만원 가까운 금액이 들었다. 5만원으로 온전한 차례상을 차리기는 절대 불가능하다"며 "최근 물가가 참 많이 올라서 힘든데, 차례상 물품을 준비하는 데도 그 여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물가를 낮춰 서민 고충을 해소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서남신시장에서 만난 박모(여·72)씨는 "5만원으로 차례상 차리기는 턱없지"라며 손사래 치면서도 "그래도 차례상에 기본적으로 올라가야 할 음식이 있는데, 이러다간 정말 밥과 나물, 과일 하나 놓고 치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차례문화 간소화 이야기가 나온다. 김모(여·75)씨는 "차례를 위해 명태와 오징어 1마리씩 구매했다. 시장에서 모든 것을 사지 않았고 대형마트 등도 이용했다. 차례상 준비에 10만~15만원 정도 들었다"며 "최근 물가도 많이 오르고 제사나 차례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차례상을 간소화하거나 아예 없애는 등 상황에 맞는 명절문화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코로나 후 세 번째 설맞이 표정

코로나19 확산 후 세 번째이자 거리두기 해제 후 첫 설이다. 하지만 전통시장 상인은 코로나19 이전만큼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칠성시장 채소상인 박현철(68)씨는 "아무래도 대목이다 보니 시장에 사람이 많고 매출도 코로나19가 심하게 유행할 때에 비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예전만큼은 못하다는 게 시장 상인의 공통 의견"이라고 했다.

코로나19가 명절을 '차례상 차리는 날'에서 '쉬는 날'로 바꿨고, 전통시장 매출에 그 여파가 미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문시장에서 건어물을 판매하는 김모(56)씨는 "거리두기가 해제됐지만 기대와 달리 차례상을 올리지 않고 연휴를 즐긴다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 게다가 물가까지 오르니 차례상을 간소화하거나 아예 차리지 않는 시민도 점점 늘고 있다"며 "매출도 현재 10~20% 떨어진 상황"이라며 한숨 쉬었다. 서남신시장에서 채소를 판매하는 권갑녀(여·61)씨도 "명절이 다가오지만 좀처럼 손님은 늘지 않는다. 차례를 많이 안 지내는 추세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설 대목을 크게 누릴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신나는 명절 분위기는 숨길 수 없었다. 줄줄이 오른 물가로 손님의 지갑 사정은 팍팍했지만, 시장 인심만큼은 여전히 넉넉했다. 과일 살 때면 시식을 권유하고, 밤을 구매할 때는 몇 개 더 담아주기도 했다. 서문시장 곳곳에는 차례상에 올릴 과일, 건어물, 나물이 즐비했고 상인은 지나가는 손님에게 "우리 물건이 참 좋다" "이만큼 쌀 수 없다"며 호객 행위를 이어나갔다. 시민들은 "제일 신선한 거로 달라" "가격이 얼마냐"며 반응을 보였다. 칠성시장 골목점포 한 판매대에는 대구경북지역 대표 차례용품인 문어가 꽃을 피워 지나가던 시민의 발길을 붙잡기도 했다.

◆행복·제로페이 사용 힘들어

전통시장에서 '대구행복페이'와 '제로페이'를 쓰는 것엔 다소 한계가 있었다. 취재진은 칠성시장에서 지역화폐인 '행복페이'를 이용해 차례용품을 구매했지만 사용 여부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점포가 있는 경우는 대부분 카드결제기를 사용하고 행복페이를 받아줬지만, 노점의 경우 대부분 현금만 취급했다. 노점상 정모씨는 "노점이나 어르신이 운영하는 가게에서는 행복페이 사용이 어려울 것"이라며 "종이로 된 온누리상품권은 받아줄지 몰라도 결제기가 없기 때문에 카드 사용은 힘들다"고 했다. 이로 인해 취재진은 행복페이 사용이 가능한 점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제로페이는 아예 사용이 힘들었다. 서문시장에서 취재진은 제로페이로 온누리상품권 5만원권을 충전해 차례용품 구매에 나섰지만, 대다수 점포에서는 제로페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노점상 등 대다수는 제로페이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제로페이 앱에서 가맹점을 알려주는 항목은 있었지만, 가맹점에 찾아가 봐도 제로페이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인근 은행 ATM에서 현금 5만원을 인출해 장보기를 계속해야 했다.

두 페이와 달리 온누리상품권만큼은 '프리패스'였다. 서남신시장 상인은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는 손님이 아주 많아서 현금 대신 온누리상품권을 받는 것이 낯설지 않다"고 했다. 이날 취재진은 은행에서 온누리상품권 5만원을 현금 4만7천500원을 주고 구입했다. 장보기에서 2천500원을 아낀 셈이다. 한편 전통시장 상권 쇠퇴를 걱정하며 지역화폐 사용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인도 있었다. 칠성시장 건어물 상인 이상엽씨는 "지역화폐를 적극 홍보해 가맹점을 늘리고 화폐 발행액을 증가해야 한다"며 "현재 정부 정책 기조가 화폐 발행을 줄이는 것인데,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탁상공론을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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