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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업 객원논설위원 |
3월 초부터 미국에서 미니시리즈 'The Dropout(자퇴자)'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헬스케어 벤처 테라노스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앞서간 선배들을 따라 스탠퍼드를 자퇴하고 창업했지만 빈약한 기술력에 사기꾼의 길로 들어선 한 젊은이의 비극이다. 실리콘밸리에는 "대학 졸업장을 땄다면 당신은 이미 벤처 기업가로서는 실패자"라는 공식도 아니고 농담도 아닌 이상한 전통이 있다고 한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해 래리 엘리슨 오러클 창업자, 자율주행차용 라이다를 개발해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오스틴 러셀 루미나 창업자 등 빅테크 창업자 중 대학 중퇴자가 유독 많은 탓이다. 심지어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은 젊은 인재들에게 창업 지원금 10만달러를 지원하는데, 지원금을 받는 조건이 당장 학교를 자퇴해야 하는, 우리로선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 중퇴에 따른 리스크의 차이는 미국과 우리 사이에 놓인 큰 강과 같다.
챗GPT를 공개하여 영웅이 된 오픈AI 창업자 샘 올트먼 역시 스탠퍼드 중퇴자로 과거 그가 블로그에 올렸던 '성공하기 위한 13가지 방법'이라는 글이 명쾌한 통찰로 전 세계에 회자되고 있다. "커리어를 J자 형태로 급격히 끌어올려라, 99%의 타인을 넘어서려면 똑똑함과 근면함 둘 다 필요하다, 가치가 급상승하는 사업, 부동산, 지식 등을 소유해야 부자가 된다" 등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성공 로드맵에 미치지 못하거나 따를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사람은 사업 성공이 어려운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이것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류의 성공 공식의 함정이다.
손톱깎이 하나로 세계 1위를 쟁취한 <주>쓰리세븐의 고(故) 김형주 창업자는 1975년 창업 이래 절삭력 강화기술만을 갈고닦고, 설비투자를 위한 은행대출마저 극도로 제한하여 늦지만 견실하게 성장한 결과 당시 1위였던 미국의 트림사를 눌렀다. 카지노용 모니터 세계 1위 <주>코텍의 이한구 창업자는 고객 신뢰를 최고의 경영목표로 오늘의 코텍을 만들었다. 1999년 미국에 3만여 대를 수출한 상태에서 불량품을 발견했을 때 수입업체의 요구가 없는데도 자발적으로 리콜, 전량을 회수하고 새 모니터를 비행기로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전자부품 기업 <주>신흥정밀의 정순상 창업자는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작은 혁신, 예를 들어 LCD TV의 LCD 패널을 떠받치는 사각형 철판 프레임을 만드는 방법을 원가 절감을 목표로 획기적으로 바꿔 세계적인 부품기업으로 성장했다. 모자 생산량 세계 1위 <주>영안모자 백성학 창업자는 10세 때 원산에서 내려온 전쟁고아로 1959년 청계천 4가에서 모자 노점상을 시작해서 현재 직원 수 9천여 명, 매출 2조원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뚜렷한 학력도 없이 평생을 낡은 가죽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전 세계를 누비며 외국 소도시에서 모자를 쓴 사람을 만나면 품질과 가격을 캐묻는 인생을 산 결과다.
위 사례의 기업인 모두는 각자의 분야와 업종에서 스스로 체득한 성공의 길을 남들보다 더 잘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고 평생 이 자세를 굳건하게 지킨 공통점이 있다. 이들 기업이 J형의 성장이나 기업가치가 단기간 급성장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자퇴론이나 챗GPT의 샘 올트먼이 보여준 성공 공식은 세계를 뒤흔드는 파괴적 혁신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실리콘밸리의 산물이란 점을 유념하여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권 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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