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메일] 내어준 들에도 봄은 오는가

  • 권칠승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 |
  • 입력 2023-09-18  |  수정 2023-09-18 07:00  |  발행일 2023-09-18 제21면

[여의도 메일] 내어준 들에도 봄은 오는가
권칠승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필자가 학창 시절을 보낸 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이 발단되고, 대한광복회가 결성된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독립유공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자 저항시인 이상화와 이육사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느냐'는 시구 한 줄에 독립운동가셨던 외조부와 선열들이 스치며 가슴 뜨거워졌던 기억이 있다. 대구를 비롯한 대한민국 곳곳에는 파란만장했던 일제 치하에서 몸부림친 우리 민족의 흔적이 아직 고스란히 존재한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살아 숨 쉬는 역사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우리 역사의 흔적과 정통성을 지우려는 집단이 있다. 일본이 민족 말살 통치를 다시 시작한 게 아닌가 싶지만, 황당하게도 대한민국 정부가 그 주체이다.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이력을 문제 삼으며 육사 내 설치된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나섰다. 반대 여론이 약 70%에 이를 만큼 국민 정서와 크게 어긋남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술 더 떠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이름 변경까지 검토하겠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실상 홍 장군에 대한 재평가에 힘을 실어줬다. 그렇게 항일 무장투쟁의 대표적 인물인 홍범도 장군은 느닷없이 공산주의자로 내몰리며 부관참시 되었다.

홍 장군이 가입했던 당시의 소련 공산당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공산당도 아닐뿐더러 독립군의 장비와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사령관으로서 피치 못할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광복 전인 1943년 사망해 북한 공산당 정권 수립과도 무관하다.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과 연관이 있다는 국방부 주장은 이미 학계에서는 사실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제대로 확인되지도 않은 일부의 극단적 주장을 근거로 홍 장군을 폄훼하고, 독립군의 역사마저도 훼손하는 시도가 참으로 개탄스럽다.

홍범도 장군의 아내는 남편을 전향시키라는 회유를 거부한 이유로 끔찍한 고문을 받던 중 혀를 끊어 말을 못 하게 됐고, 옥살이로 생을 마감했다. 큰아들 홍양순은 홍 장군과 함께 일본군을 상대로 한 전투에 참전해 전사했다. 둘째 아들은 일본군의 방해로 결핵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항일투쟁으로 혼자 남겨져 쓸쓸히 죽음을 맞았건만, 후대로부터 이런 모독을 받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한국사 과목에서 독립운동 범위가 줄게 돼 공부하기 수월하겠다고 자조하던 어느 학생의 말에 어질하다. 아이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윤석열 정부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다. 편향적인 해석과 일방적인 단정으로 인해 받게 될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에서 확인됐듯이 권력으로 역사를 다시 쓰려는 시도는 지금껏 성공한 적이 없고, 성공할 수도 없다.

대일 문제와 관련,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정부 정책이 계속되고 있다. 강제 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방관에 이어 독도 주권 수호 및 역사왜곡 대응 연구를 위한 내년도 예산까지 삭감했다. 이 부끄러운 시도조차도 결국 역사로 남을 것이다. 선열들의 피와 눈물로 되찾은 들이고, 봄이다. 우리 주권, 우리 영토, 우리 역사를 우리가 지켜내지 않으면 누가 지킬 수 있겠는가. 내어준 들에서는 봄을 찾을 자격도 명분도 없다.권칠승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