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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 |
추석, 한가위는 우리나라의 으뜸 전통명절 중의 하나이다. 한가위의 어원을 보면 한 해의 한가운데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신라 유리왕 때 '가배(嘉俳)'라는 말에서 '가위'로 변했는데, 지금도 영남 지방에서는 '가분데'라는 말로 전해지고 있다. 추석 무렵 산소에 벌초하고 차례를 지내던 풍습이 이후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냄으로써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송편을 함께 먹으며 풍요로움을 누리는 전통문화로 발전하였다. 이를 통해 조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겼으며, 친인척 간의 유대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제는 명절 풍속이 여행 가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특히 이번 추석은 길게는 12일까지 길어진 연휴에 여행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얼마 전부터 명절 휴가 기간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이 북적이고 비행기 표를 미리 예매해 놓아야 하는 여행 성수기가 되었다. 명절의 전통문화 양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속성상 항상 변하고 학습되고 축적된다. 전통문화도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 변화하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 하지만 전통문화 속에는 정신적 가치가 존재하며, 이것은 인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떤 원숭이가 처음에는 고구마를 보고 털에 문질러 흙을 털어내고 먹다가, 우연히 바닷가에서 고구마를 떨어뜨려 흙은 씻겨나가고 소금이 묻어서 간이 된 고구마를 먹게 되었다. 이때부터 주변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서 먹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인류의 '문화'와는 다른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축적될 뿐만 아니라, 인류학자 굿이너프(Ward H. Goodenough, 1961)가 주장하는 관념체계라는 것이 그 속에 존재한다. 굿이너프는 한 사회 구성원의 생활양식을 토대로 하는 관념체계 또는 개념체계를 문화로 보고 있다.
프랑스 유학 시절 프랑스문화원에 근무하던 한 스페인 직원과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오른다. 나는 한국인들은 조상이 누구이며 자신이 몇 대손인지 안다고 했고, 스페인 직원은 어떻게 아냐며 놀라워했다. 내가 한국의 족보에 대해 설명해 주니 자신들은 먼 조상에 대해 알 수 없으며, 왕족만이 그런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스페인 왕가의 계보가 적힌 작은 책을 선물로 주었고, 나는 왠지 모르게 우쭐한 마음이 들었었다.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 서구의 선진 문명은 모든 것이 옳아 보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서구를 따라 해야만 선진적이라 믿었고 서구의 문화를 흡수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전통문화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서구사회보다 더 선진적이며 수준 높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싶다.
한 번 잃어버린 전통문화에 대한 관념체계는 다시 복구하기도 쉽지 않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된 후 사회주의 문화와 배치되는 전통문화를 부정하기도 했다. 신중국 이후 심지어 중추절은 오랫동안 법정 공휴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전통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중국은 2008년부터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 등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고 자신들이 오랜 전통문화를 지닌 우수한 민족임을 알리고자 했다.
추석을 보내는 방식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비행기 타는 추석도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가을 달빛 좋은 추석을 앞두고, 조상을 기리고 자연의 풍요로움을 함께 누리는 전통관념 역시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K-컬처가 아닐까.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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