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1〉 지속가능한 마을 생태계 구축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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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1 07:59  |  수정 2023-12-04 13:02  |  발행일 2023-10-11 제16면
관광 콘텐츠 무궁무진한 경북…마을의 가치 찾는 힘 길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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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마을 가운데는 보존해야 할 유무형 유산과 빼어난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 많다. 소중한 추억과 역사를 가진 마을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속가능한 생태계 구축을 위해 지붕 없는 박물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포항시 장기읍성에서 바라본 농촌마을 전경.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농촌마을에는 폐가가 늘고 있으며 마을 전체가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마을도 많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경북의 자연마을은 2015년 9천210개였으나 불과 5년 뒤인 2020년에는 7천446개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재 경북의 마을은 고령화, 빈 공간화 촉진, 빈곤화가 지속돼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마을의 소멸은 중장년 세대에게는 삶의 추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소중한 유무형 문화자원을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경북의 마을은 저마다의 소중한 추억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수천 년 이상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마을의 가치를 다시 재조명하고 우리 삶 속으로 끌어올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영남일보는 대구경북학회와 함께 마을의 가치를 재조명해보는 '경북의 마을-지붕 없는 박물관' 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기획취재는 지면반영과 함께 마을의 전경을 담을 동영상을 함께 제작해 외국어로 번역해 유튜브에 업로드할 예정이다.

저마다 소중한 추억·역사 간직한 마을
방치해두면 어느 순간 사라질지 몰라
자발적 커뮤니티 형성·주민 교육 필수
마을상품 기획 등 콘텐츠 개발 힘써야

◆마을의 가치

마을은 인위적인 도시공간과는 다른 가치를 지닌다. 초기 대부분의 마을은 지형을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마을은 유무형 자원의 보고로 마을전체가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높은 곳이 많다. 산업화 이전까지 삶의 주된 터전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마을을 새롭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마을이 본래의 기능, 원초적 역할은 다했다고 할지라도 보존하고 가치를 복원해야 할 마을들도 많다. 주마간산식으로 지나치면 이 마을, 저 마을이 같아 보이지만 마을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가치는 다 다르다.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스토리텔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마을이다.

마을이 해가 갈수록 무서운 기세로 사라져가고 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 아직은 더 많다. 비록 젊은이들이 많이 떠났지만 건전한 커뮤니티가 형성돼 아직도 마을을 가꾸고 있는 주민들이 많으며, 삶의 터전으로서 소중한 마을이 많다.

경북의 마을은 역사문화를 통한 자기실현, 자연환경에 대한 경외, 인간 삶의 존중, 산업 및 전쟁의 다이내믹한 문화 등 문화자본으로서의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 마을 붕괴, 지역소멸의 위기 상황에서 삶의 거주공간이자 자연생태역사문화의 현장인 마을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지속 가능한 마을을 위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관광자원화 가능한가

하지만 이런 마을들도 그냥 방치해 두면 어느 순간 사라질지 모른다. 인구감소와 산업화·도시화로 순환구조(생태계)가 무너져 지속 가능한 마을은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경북의 마을은 역사문화, 생활문화, 자연친화성, 문화재 등 관광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관광자원으로서 마을의 가치를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들이다.

전 세계 관광트렌드 또한 바뀌고 있다. 세계 유명 대형 박물관 중심 관광이 숙지고 지역주민의 삶과 문화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일상공간에 대한 여행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관광지 단순 방문과 관람보다 기억에 남는 경험과 체험, 참가 등 여행지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체험형 관광이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깊은 산골짜기와 유유히 흐르는 강과 계곡을 배경으로 형성된 경북의 마을은 빼어난 자연 경관과 다양한 마을 유산들로 가득 채워진 문화 집합체로서 최고의 관광지이자 문화뮤지엄이라 할 수 있다. 마을 그 자체가 박물관인 것이다.

◆전통 박물관

전통적인 박물관은 가치가 높은 유산을 그 현장에서 분리해 박물관에 소장한다. 박물관 건물 안에 유물 중심의 보존과 전시가 큰 역할을 한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박물관 유물을 전문가의 관점에서 공개하고 전시하는 공적 기능을 하는 것이 전통박물관의 모습이다.

이 같은 박물관과 미술관은 아직도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유층의 전유물이다. 개인 컬렉션 등을 통해 일부 부유층에만 공개되는 등 권위적이며, 주로 도시에 사는 엘리트를 위한 공간으로 인식된다.

이들 박물관은 18세기 말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면서 공공박물관이 탄생한다. 초창기 공공박물관은 계몽과 교육이 주요 목적이었고 제국주의를 거치며 국가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에코 뮤지엄(Eco Museum)

에코뮤지엄은 1973년 조르주 앙리 리비에르(Georges Henri Riviere)가 프랑스의 지역 상황과 지역 주민의 삶에 지역 민속학을 접목해 인간, 자연, 지역유산을 박물관의 범주로 만든 개념이다. 생태를 의미하는 에콜로지(ecology)의 접두사 에코(eco)와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로 탄생했다. 지역재생운동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중핵 자원인 거점 박물관, 분포된 유산의 거점 공간인 위성박물관, 지역의 자원과 유산을 발견하는 탐방로 등이 조성돼, 지역의 건축물과 역사문화유산, 자연경관, 주민의 경험과 기억, 네트워크 등 유·무형의 유산을 내외부인을 대상으로 전시했다.

지역 주민들의 주도적인 참여로 지역 유산의 수집, 보존, 조사, 연구, 기획, 실행하는 보존 기관으로써 연구소,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어 한 지역주민이 지역전문가로서 역량을 축적하는 유의미한 박물관이기도 하다.

◆지역 공동체박물관

공동체박물관(Community Museum)은 지역의 낙후된 건축물의 재생과 기존 박물관의 문턱을 낮춘 신개념 박물관이다.

생활환경 개선을 넘어 문화, 복지, 교육 등의 변화 및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한 지속 가능한 공동체 조성을 중요시하며 주민의 자생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지역의 고유성을 존중하고 지역 주민의 삶을 바탕으로 하며, 마을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전시, 체험 등이 이루어진다. 지역 주민의 삶과 의견, 이를 반영하고 제작하는 문화기획자와 예술가 등의 협업으로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자 지역의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으로 급부상했다.

1967년 설립된 미국 아나코스티아 커뮤니티뮤지엄(Anacostia Community Museum)이 대표적이다. 당시 마을 내 오래된 극장을 개조하여 전시시설로 활용했다. 지역 내 공동체의 다층적 의미와 공동체박물관의 역할 변화, 지역사회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등 지역의 문화유산과 지역 이슈를 다루는 박물관으로 성장했다.

◆지붕 없는 마을박물관

정부나 지자체에서 박물관 건물을 짓고 공무원을 파견해 관리하는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전혀 다른 주민주도 박물관이 지붕 없는 마을박물관의 특징이다. 지붕 없는 마을박물관은 마을과 박물관의 융복합적 모델이다. 에코뮤지엄의 핵심 기능인 지역 유산(Heritage), 주민 참여(Participation), 박물관 활동(Museum) 등의 3요소를 확대·진화한 것으로 지속 가능한 마을 발전을 지향한다. 에코뮤지엄(Eco Museum)과 공동체박물관(Community Museum) 기능에 지역주민의 자발적 커뮤니티 기능을 중요시하는 한국형 박물관 모델이라 할만하다.

지붕 없는 마을 박물관은 마을의 자연환경, 경관, 사이트, 문화재, 문화유산, 문화 공간, 생태 공간, 생활공간, 마을산업(상업) 및 특산품, 적정기술(음식, 농업, 어업 등), 역사적 공간, 지역공동체 등 유·무형의 유산(Village Heritage)을 현지 보존한다.

또 마을 이해를 시작으로 정체성 확립과 마을의 고유한 유산에 대한 역사성, 자긍심 고취 등 주민 스스로 지역 공동체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Resident Participation)하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을 주민이 박물관 활동의 중심이 되어 유산의 현지 보존 및 관리, 박물관 콘텐츠를 기획하도록 했다.

마을 관광(Village Tourism)도 주민 주도하의 관광 활성화 기획 및 공유 경제 실현으로 지속 가능한 마을 생태계를 구축하자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서 마을의 자발적 커뮤니티 형성은 필수적이다. 마을 주민, 지역 학생, 참여자 등을 대상으로 마을박물관 학교(교육)를 운영해 마을박물관 주민 학예사 양성 교육, 자료 인덱스 교육, 카페(셰프) 교육, 마을 상품 기획 및 경제 교육 등을 추진하도록 했다.

박승희(영남대 교수) 대구경북학회 회장은 "지붕 없는 마을 박물관은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 되는 공간적 전환과 더불어 대중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마을을 지향한다"면서 "마을 주민이 주체가 돼 마을유산을 보존하고 지역사회의 발전과 관광, 교육 등을 함께 도모함으로써 마을의 대중화를 실현하는 지속 가능한 마을박물관으로의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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