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상화시인상] 이근화 시인 수상소감 "빼앗긴 들 한가운데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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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5 08:02  |  수정 2023-12-05 08:01  |  발행일 2023-12-05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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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에 수록된 작품들을 쓰고 출간할 무렵 저는 좀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장기화 국면에 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시 같은 건 못 쓰게 되면 안 쓰면 그만이지 했다가도, 시를 쓰는 호흡과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날들이었습니다.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 몇몇이 세상을 떠나 상심했고, 어떻게 애도를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떨쳐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만, 소소한 것들에 눈길을 주며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제게는 힘이 되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읽고 보고 들으며 제 자신을 다시 더듬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주변의 것들과 손잡고 공들여 다시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시란 그렇게 어디에나 있는 것, 늘 옆에 있는 것들과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묻고 대답하지 않으면 세상은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귀를 기울여 듣지 않으면 귀한 목소리를 금세 놓치고 맙니다. 큰 것들에 가려진 작은 것들의 세상에 눈을 뜨고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고, 시 쓰기란 본래 그렇게 가려진 존재들의 목소리에 입술을 달아주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워크맨으로 들었던 노찾사의 1집 일곱 번째 곡은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였습니다.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이라는 구절이 저는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 들어보니 마지막 부분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이 꿈속을 가듯 걸어가는 혼몽의 길이라면,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더라도 봄 신령이 지핀 듯 생기와 활기를 잃지 않겠습니다. 이상화 시인처럼 우리 땅의 들과 하늘, 구름과 바람, 꽃과 새들의 호흡을 두루 살피며 함께 가겠습니다. 빼앗긴 들 한가운데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런 다짐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길 수 있도록 해주신 이상화기념사업회와 영남일보, 그리고 세 분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근화 시인=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칸트의 동물원' '우리들의 진화' '차가운 잠'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 '나의 차가운 발을 덮어줘'가 있다. 동시집 '안녕, 외계인' '콧속의 작은 동물원' 산문집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 '고독할 권리'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를 펴냈다. 김준성문학상, 현대문학상,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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