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댄싱 붓다들, 별이 된 남편에게…미처 하지 못한 작별인사

  • 백승운
  • |
  • 입력 2024-04-12 07:57  |  수정 2024-04-12 07:57  |  발행일 2024-04-12 제16면
14년간 함께한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번개처럼 죽음이 내 사랑을 덮쳤고…'
시인의 애틋하고 각별한 마음 담긴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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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 붓다들'은 김현옥 시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남편을 위해 펴낸 헌정시집이다. 시인에게는 더 없이 애틋하고 각별한 시집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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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옥 지음/만인사/118쪽/1만2천원

199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현옥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서문으로 쓴 '시인의 말'을 읽고 나면 별도로 수록한 '산문'에 눈이 먼저 간다. 시집을 펴낸 사연이 애틋해서다.

맨 마지막에 실린 산문 '귀천, 그리고 귀가'에는 이번 시집을 '펴내야만' 했던 이유가 담겨 있다. 짧은 글이지만 남편 에토레와 함께한 14년간의 여정이 한편의 서사처럼 펼쳐진다.

시인과 에토레는 2009년 인도 푸네의 오쇼국제명상센터에서 처음 만났다. 이듬해부터는 노마드 생활을 시작했다. 여름 석달은 에토레가 있는 시칠리아에서 함께 지냈고, 10월에는 에토레가 한국에 나와 한 달가량 머물렀다. 겨울 석달은 인도에서(어느 해는 베트남, 태국, 라오스) 함께했다. 그러던 중 2021년 시인은 시칠리아로 건너가 결혼이라는 법적 절차를 거치면서 연인에서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하지만 남편 에토레와의 인연은 느닷없이 끝을 맺었다. 한국에 두 달을 머물며 시칠리아로 떠나기 2주 전, 그날도 에토레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여느 날처럼 물을 마셨고 요가를 하며 몸을 풀었다. 그러던 그가 침대에 가서 좀 눕겠다며 걸음을 옮기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이후 에토레는 깨어나지 못했다. 한순간이었고 예고도 없었다. 시인은 갑작스러운 작별을 '번개처럼 죽음이 내 사랑을 덮쳤고'라고 표현했다. 장례를 치른 후 8일째 되는 날, 시인은 남편을 위한 시집을 준비한다. 에토레를 보내는 시인 자신만의 의식처럼….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에토레 그릴로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시인의 말처럼 이번 시집은 홀연히 세상을 뜬 남편 에토레에게 바치는 헌정시집이다. 시인에게 더 없이 애틋하고 각별한 까닭이다.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시인이 2021년 완성해 놓았지만 세상에 내놓지 않고 컴퓨터 속에 보관하고 있던 작품들이다. 에토레는 생전에 "시집이 완성되었는데 왜 출판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 시인은 "나중에 때가 오면"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시인은 산문에서 "시집 출판을 서둘러 하지 않은 것도 이때를 위한 것인가?"라며 스스로 묻는다. 그러면서 이번 시집에 실린 시 '오래된 영혼'을 다시 읽어보니 지금의 나를 예견하고 쓴 것 같다고 고백한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집에 도착한 오래된 영혼/ 쪼그라든 팔다리와/ 더는 화장이 필요 없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네/ 더는 가야 할 곳도/ 만나야 할 얼굴도 없다는 것이/ 그토록 찾아 헤맨 집이 제공하는/ 안식의 메뉴인가// (중략)// 오래된 영혼,/ 겹겹의 길 위에서 읽어온 모든 풍경들을/ 저 저녁노을의 마지막 타오름 속에/ 불쏘시개처럼 다 던져 넣네/ 불타는 침묵의 하늘 너머/ 서쪽나라로 떠나는 마지막 길은 아직/ 형형한 눈길 속에 남겨두고서"('오래된 영혼' 부분)

작품 중에는 남편과 함께했던 곳도 자주 나온다.

"인도 아람볼 해변의 밤하늘로/ 청춘남녀들, 둥실 날려 보내네/ 소원 담은 붉은 마음 한쪽// (중략)// 그 붉은 마음/ 어느 찰나, 별이 되었을 때/ 우리는 와아아! 탄성을 터뜨렸지만/ 모든 절정이 그러하듯/ 시한부의 별은 이내/ 바다무덤 속으로 천천히/ 천천히 걸음을 옮기네/ 삶과 죽음이 밤하늘을 수놓네"('풍등' 부분)

시인은 산문 마지막에 남편 에토레에게 미처 하지 못한 작별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맺는다.

"내 삶의 화양연화는 에토레와 함께 했던 시절. 내게 화양연화를 선사하기 위해 내 삶을 다녀간 에토레, 그라찌에, 띠 아모! 당신이 선사한 그 화양연화의 기억으로 남은 삶의 길 잘 건너갈 테니, 에토레, 이제 천국에서 편히 쉬길."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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