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부부학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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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13  |  수정 2024-06-13 08:07  |  발행일 2024-06-13 제16면
[문화산책] 부부학
서정길수필가

1982년 새해, 계산성당에서 혼인미사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나의 결혼은 마을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목구비가 훤칠한 서울 여자가 왜 시누이 시동생을 줄줄이 둔 시골집 장남과 결혼하겠느냐. 사주팔자가 거세거나 필시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여자라는 등 온갖 억측이 나돌았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암 진단을 받았다. 아내의 몸이 마른 갈대처럼 야위어가자 흉흉한 소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너무 늦었다는 의사의 말에 아내도 나도 눈물로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수술을 앞두고 기도에 매달렸다. 살려달라는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을까. 암 덩이가 사라지고 없다는 의사의 소견에 깜짝 놀랐다. 믿기지 않는 기적이었다.

결혼한 지 42주년을 맞았다. 케이크에 촛불 밝히고 결혼 기념을 자축했다. 케이크를 자르기도 전에 아내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아내는 1인 5역을 감당한 전사의 삶이었다. 편모를 봉양하는 며느리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였다. 거기다가 네 명의 시누이와 시동생, 머슴까지 뒷바라지하느라 아내는 집안의 대소사까지 챙기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이젠 어머니도, 애지중지 키웠던 자식도 우리 품을 떠났다. 거부할 수 없는 세월은 우리 부부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란 묵직한 작위를 부여했다. 그 작위를 얻기까지 세월의 흔적이 아내의 몸 곳곳에 새겨져 있다. 하얘진 머리카락, 눈가에 굵은 주름, 미로처럼 핏줄이 드러난 손등은 험난한 세파를 헤쳐온 대서사시다.

푹 패인 주름 행간에 새겨진 고통의 무게를 떠올린다. 피로에 지친 육신보다 상처 입은 마음은 어떠했을까. 속으로만 삭였을 고통을 보듬어 주지 못해 마음이 아리다.

아내는 케이크 하나에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 '여보 고마워, 사랑해'를 연거푸 말한다. 가당찮은 말이다. 내가 해야 할 말이 아닌가. 지난날의 아픈 기억을 모두 씻어낸 듯하다. '내가 고맙지, 미안해, 사랑해.' 그 말은 입안에서 맴돈다. 그저 푼수 같은 남편을 믿어주고 따라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부부 일치 운동(ME, Marriage Encounter)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배우자 알기 프로그램에서 서로가 서로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무관심 때문이었다. 부부란 몸도 마음도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임을 그때야 깨달았다. 무관심에서 '무'를 떼 내고 살기로 약속했다. 서로 삶의 태도를 존중해주고 배려해 주는 것, 아주 소소한 일에 관심 가져 주는 일이 최고의 부부학이 아닐까 싶다.
서정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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