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제2의 '희동구씨'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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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22  |  수정 2024-07-22 06:59  |  발행일 2024-07-22 제23면

[월요칼럼] 제2의 희동구씨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장준영 논설위원

과연 최선이었고, 사심은 없었을까. 대한축구협회가 기어이 홍명보 감독을 남자 축구대표팀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우려대로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국민들에게 엄청난 좌절감과 분노를 경험케 했던 '클린스만 참사'로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가운데 협회가 보란 듯이 과시한 만용이어서 더욱 가관이다. 선임과정의 불공정성과 절차상 문제점 등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박주호 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을 상대로 즉각 법적대응을 운운할 때부터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음을 스스로 까발렸다. 특히 당사자인 홍 감독은 선임 직전까지 협회를 직격하는 발언을 내놓은 데다, "대표팀을 맡을 생각이 없으니 팬들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누누이 강조했기 때문에 프로축구 울산을 비롯, K리그 팬들의 배신감은 매우 컸다. 당연히 후폭풍은 일파만파로 거세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2002한·일월드컵이 안겨준 감동과 성취감, 그리고 자신감은 가히 역대급이었다. 국민이 하나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명장면도 속출했다. 선수들의 투지와 의욕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구슬을 꿰어 보물로 만든 히딩크 감독의 역량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0-5로 패한 탓에 한동안 '오대영'이란 치욕적인 별명이 따라다닐 때도 "지켜보라"고 일갈하면서 모래알 같았던 대표팀을 '원팀'으로 조련, 끝내 4강 진출의 신화를 완성했다. 그는 16강 진출 쯤부터 네티즌들 사이에서 '희동구(喜東丘)'로 불리며 명예 한국인이 됐다. 망국적인 학연·혈연·지연과 전혀 관련없는 인물로, 오로지 실력·체력·인성을 기준으로 삼아 일군 쾌거였다.

희동구씨가 느닷없이 소환되고 있는 이유는 한국축구의 현재와 미래가 심상찮기 때문이다. 위기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88서울올림픽부터 9회 연속 이어져온 본선 진출이 2024파리올림픽때 중단됐다. 또 지난 6월 U-19 대표팀이 친선대회에서 중국팀에 0-2로 완패한데 이어, 최근 U-15 대표팀이 목포에서 열린 한·중교류전에서 1-4로 대패하는 등 연령대별 대표팀의 부진이 예사롭지 않다. 전횡에 가까운 대한축구협회의 일처리가 매끄럽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아 반목과 분열을 초래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직내 이너서클의 장악력과 막강한 입김이 한국축구를 수렁으로 몰고간다는 원망과 비난 수위 또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불과 며칠 사이 말과 행동과 철학이 급변한 홍 감독은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니 응원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외국인 코치 선임을 위해 지난 15일 유럽으로 떠난 상태다.

감독선임을 둘러싼 논란이 정부와 국회로 옮겨 붙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김승수(대구 북구을) 의원은 대한축구협회를 향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가급적 축구협회의 자율성을 존중해왔다는 문화체육관광부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데 이어, 스포츠윤리센터가 권한 남용과 절차적 하자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홍 감독 선임 이후 박지성을 비롯, 이영표와 이천수 등도 협회 일처리에 대한 비판대열에 동참했다. 국가대표팀에는 혈세가 투입되고 공적인 지위가 부여되기 때문에 감독 선임과 선수 선발 등의 과정은 투명하고 적법해야 함은 당연하다. 한국축구의 재도약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엄중한 조치가 뒤따라야 가능해진다. 어떤 조직이든 고인 물은 대개 썩기 마련이다.

장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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