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독대의 매력

  • 성욱현 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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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23  |  수정 2024-07-23 07:50  |  발행일 2024-07-23 제17면

성욱현
성욱현<시인·동화작가>

독립서점을 찾는 사람 중에는 혼자인 사람이 많다. 그러니까 혼자서 서점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서점은 혼자일 때 더 자연스러운 곳이다. 책이라는 것 자체가 저자와 독자의 일대일 만남이라는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혼자인 손님이 편한데, 혼자 온 손님과는 더욱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손님이 온전히 책과 서점에 몰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서점주인으로서 무엇보다 기쁜 일이기도 하다.

집에 있기에는 울적하고, 집 밖으로 나가 하루를 보내고 싶은데 만날 사람은 없고 아니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럴 때 내가 찾곤 했던 곳이 동네의 서점들이었다. 그곳에 가면 혼자가 당연해진다. 조용히 인사하고 발소리를 죽인 채 책장을 훑고 마음에 드는 책을 집는다. 그러다 가끔은 책방 주인장과 이야기를 튼다. 독대의 순간들이 이어진다. 내게 필요했던 건 혼자만의 시간이 아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 줄 누군가였다. 혹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누군가였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순간을 종종 경험했을 것이다.

독대라는 말은 죽어가는 말이다. 독대의 사전적 의미는 벼슬아치가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임금을 대하여 정치에 관한 의견을 아뢰던 일이다. 현대에서는 어떤 일을 의논하려고 단둘이 만나는 일로 쓰인다. 주로 윗사람과의 만남을 이른다고 한다. 단어 자체가 무겁고 어렵기도 하거니와 권력 구도가 깃든 단어가 점점 사라지는 요즘의 추세에 따라 일상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매분 매초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이 시대에 독대라는 말을 쓰는 상황도 줄었겠다.

독대의 사라짐이 아쉽다. 다른 무엇보다 독대라는 말이 나타내는 한 사람의 세계와 한 사람의 세계가 만나는 오롯한 순간이 적어지는 요즘이라 더욱 그렇다. 신분이나 계층을 넘어 확고한 의지가 담긴 이야기를 개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건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멋진 광경이다. 그 부딪힘에는 오직 너와 나에게 집중하고자 하는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기에 더욱 그렇다.

책은 무언가를 알려주거나 들려주는 일만 하지 않는다. 책은 하나의 세계이다. 좋은 세계가 그렇듯, 좋은 책이라면 의견을 들려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독자는 그 세계를 다녀가며 자신의 의견을 들려줌으로써 책과의 독대가 이뤄진다. 책은 사실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욱 바라고 있다.

독립서점을 찾는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책으로 세계를 만들어두고 사람과의 독대를 고대한다. 이곳에 와서 타인의 의견이나 외부의 영향을 물리치고 오롯이 세계의 주인과 독대하는 모험가처럼 멋진 선택을 개진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책과의 독대, 서점과의 독대를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거나 대화의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언제까지고 말없이 기다린다. 오롯이 당신을 위해서. 마감 시간이 된다거나 당신이 더이상 책장을 넘길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거나 따분하지만 않다면 언제까지고 말없이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책, 그리고 책으로 만들어진 세계인 서점에서 독대의 매력을 느껴보길 바란다.성욱현<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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