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광화문의 그들

  • 김진욱
  • |
  • 입력 2024-08-19  |  수정 2024-08-19 06:57  |  발행일 2024-08-19 제23면

[월요칼럼] 광화문의 그들
김진욱 논설위원

제79회 광복절인 지난 15일.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각자 기념식을 가졌다. 해방 직후 일어났던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이 요 며칠 사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벌어졌다. 80년 전의 퇴행적 행동을 하고 있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심각하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고, 장년층들은 소득절벽에 처참해 한다.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서 있고, 지방소멸과 인구소멸은 눈앞의 현실로 와 있다. AI(인공지능)가 일상화될 미래 준비로 바빠야 할 지금, 우리는 과거로 돌아갔다.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쪼개진 그 날, 필자는 광화문의 '태극기 부대' 에 관심이 갔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 주최의 '광복절 범국민 총궐기 대회'가 광화문 거리에서 열렸다. 이날 서울의 최고 기온은 34℃. 폭염으로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안내가 있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집결했다. 주최 측 주장 5만명, 경찰 추산 2만명이 광화문 거리를 메웠다. 무엇이 이들을 모이게 했을까.

이날 집회 참석자들은 "자유대한민국 만세" "윤석열 대통령 만세" 등의 구호를 외쳤다. 대구에서 올라간 필자의 지인은 "지금 보수 우파가 행동하지 않으면, 좌파에 의해 나라가 망할 것 같다"고 했다. 태극기 부대에 대한 대체적인 인식은 강성 보수 집단이다. 극우 세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태극기 부대에는 고령층이 상당수 있다. 태극기 부대 고령층의 목소리는 단순한 정치적 행위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사회적 맥락을 담고 있다고 필자는 본다.

이들이 내는 목소리는 자신들의 삶과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이런 기반 위에 미래에 대한 불안을 광화문 거리에서 표현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면서 쌓아왔던 대한민국의 발전과 안정 그리고 추구했던 가치가 지금 위협받고 있다고 느낀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치와 경험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지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다시 혼란스러운 시기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도 갖고 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탄핵을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집단이 된 것이다.

이와 별개로 필자는 초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층이 갖는 정치적 비중을 태극기 부대에서 본다. 우리나라는 내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고령층은 투표에 적극적이다. 게다가 태극기 부대는 조직화돼 있다. 초고령화 사회에서는 실버층을 장악하는 정치집단이 권력을 쥘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마우로 기옌이 쓴 베스트 셀러 '2030 축의 전환'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태극기 부대의 고령층은 아직 건강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그것도 영향력 있는 정치 집단으로 존재할 것이다. 태극기 부대를 우군으로 만들려는 보수정치 집단의 시도는 앞으로 더 노골화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태극기 부대를 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게 눈앞으로 다가온 초고령화 사회의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어쩌면 '태극기 부대 =극우'라는 인식은 이들을 폄훼하려는 세력이 씌운 프레임일 수도 있다. 태극기 부대도 일반 국민이 동의하는 대중적인 화법을 쓰는 노력을 병행하길 바란다.

김진욱 논설위원

기자 이미지

김진욱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