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솔스케이프, 어떻게 가다듬으며 살 것인가…'영성'의 풍경을 짓다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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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9-27  |  수정 2024-09-27 08:41  |  발행일 2024-09-27 제16면
물신주의에 맞서는 건축의 본질

사라진 '영성' 되찾는 400㎞ 여정

고요·묵상·사유·성찰·평화·연대

내면에 집중하는 '마음'과 마주

[신간] 솔스케이프, 어떻게 가다듬으며 살 것인가…영성의 풍경을 짓다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하양 무학로 교회. 〈영남일보 DB〉
[신간] 솔스케이프, 어떻게 가다듬으며 살 것인가…영성의 풍경을 짓다
승효상 지음/한밤의빛/356쪽/2만3천500원

"건축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우리 삶의 배경이 되도록 단순하고 침묵해야 한다."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 건축가 최초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작가, 은관문화훈장 수훈자, 미국 건축가협회 명예상 수상자, 아시아인 최초 오스트리아 학술예술 1급 십자수훈 건축가…. 매체에서 승효상을 수식하는 언어는 화려하다. 하지만 그는 건축사무소 이로재 대표로서 50여 년째 실무 현장에 머무르며, 여전히 번민하고 숙고하면서 집을 짓고 글을 짓는 건축가다.

'빈자의 미학' '스스로 추방한 자들의 풍경'…. 건축가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건축을 서술하는 명료한 건축 언어를 지니고 비교적 많은 책을 펴냈다. 이러한 그가 마지막 과제로 붙든 어휘가 바로 '솔스케이프(Soulscape)', 영성의 풍경이다.

그의 건축언어 밑바탕에는 오래전부터 '영성'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스스로를 어떻게 가다듬으며 살 것인가다. 영성에 관한 탐구는 전작 '묵상'에서 분명하고 깊어졌다. 그는 물신주의에 맞서고자, 사라진 영성을 되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여행길에 나서 영성의 현장들, 수도원이나 묘역을 찾았다. 건축을 할 때는 한 부분이라도 사유하고 성찰하는 장소로 만들고자 힘을 쏟았다. 그리고 건축가로 반세기를 지낸 지금, '솔스케이프'라는 주제를 가지고 영성의 건축을 짓고자 하는데 이르렀다.

'영성'이라 하면 먼저 종교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승효상은 종교적 의미로서 영성뿐 아니라 비윤리적인 사회와 천박한 자본주의에 항거하는 의미로서 고요와 묵상, 사유와 성찰, 평화와 연대를 포괄하는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한다. 승효상이 정신적 가치를 궁구하고 영성의 풍경을 짓고자 하는 것은 그 자신이 맑은 영성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외려 탐욕, 위선, 나태, 교만, 분노 등 자신의 과오 속에서 고통받으며 괴로워한다고 고백한다. 번민과 숙고를 끝없이 거듭하기에, 더 절박하게 영성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성을 향한 승효상의 여정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이 책은 승효상이 짓고 만난 영성의 건축 풍경을 기록한 건축 에세이다. 군위 수목원 사유원부터 하양 무학로 교회, 경주 독락당, 양산 통도사와 만취헌, 부산 구덕교회, 김해 봉하마을, 밀양 명례성지, 칠곡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까지. 건축의 본질과 영성의 의미를 묻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약 400㎞의 여정이 150여 장의 아름다운 흑백 도판과 함께 제시된다.

흑백으로 마주하는 건축 풍경은 더욱 진실한 공간으로 다가온다. 장소가 지닌 의미도 한결 깊어진다. 승효상이 전하는 건축 풍경을 쫓다가 어느새 건축가와 한마음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하는 건축보다, 빛과 어둠의 변주만으로 명상을 일으키는 건축이 더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유하고 성찰하는 건축 풍경이 지닌 깊은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번잡함을 벗어나 고요하고 단단하게 내면에 집중하는 마음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진부하고 습관적인 생활을 탈피해 새로운 힘을 얻고자 길을 나서는 독자에게 독창적인 여행 안내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책으로 여정을 대신하려는 이들에게는 일상을 벗어난 듯한 깊은 묵상과 사유의 시간을 선사하는 가이드가 될 것이다. 좋은 건축은 어느 길, 어느 공간에서도 우리를 성찰하게 한다. 이 책은 물신주의에 순응하며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 사유하고 성찰하는 건축 풍경이 지닌 뜻과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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