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문화예술 지원에도 품격이 필요하다](https://www.yeongnam.com/mnt/file/202410/2024100601000161900005701.jpg)
특히 특정 도시의 문화예술 저변은 해당 지역의 경제력 또는 삶의 질과 비례하는 경우가 많기에 다채로운 문화예술 행사는 매우 반가운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얼마 전 기자는 지역에서 열린 한 문화예술행사 개막식에서 다소 아쉬운 장면을 목격했다. 해당 행사를 지원한 단체 및 관계자들에 대한 내빈소개가 이어졌지만, 정작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작가에 대한 소개는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행사에 참여한 한 노(老) 작가는 주최 측의 행사 진행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개막식 중 자리를 뜨고 말았다.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수많은 관람객과 소통한다는 설렘과 기쁨이 컸을 것임에도 왠지 모를 씁쓸함만 남긴 채 개막식장을 떠나버린 것이다.
지난해 대구에서 열린 비교적 대규모의 한 문화예술행사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사례를 본 적 있다. 개막식에 등장한 한 단체의 관계자는 해당 행사의 의미와 예술적 평가 보다는 행사 예산과 관련된 이야기로만 축사를 갈무리하고 말았다. 경기침체로 문화예술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문화예술행사를 지원하는 단체와 기업 및 개인의 고충도 크겠지만, 해당 인사의 이러한 발언은 '너무 하다'는 생각을 넘어 문화예술인들의 축제에 찬물을 끼얹은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문화예술에 대한 각계의 관심과 지원은 매우 고마운 일이지만, 예술가에 대한 진심 어린 존중이 없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유럽의 문예부흥을 이끈 '르네상스'의 후원자인 13~17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명문 귀족 가문인 메디치가(家)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에 대한 메디치가의 진심 어린 지원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비롯된 인간 중심의 문화예술을 부흥시키는 르네상스의 바탕이 됐다.
이러한 변화는 르네상스 시기의 수많은 예술작품에서도 관찰된다. 주로 신(神)을 표현한 중세의 작품들 속에서 인간의 모습은 신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고 그 크기마저도 작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탄생한 상당수의 종교 관련 작품에서는 신보다 섬세하게 드러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르네상스는 오로지 신에 대한 경배에만 천착했던 중세 유럽과의 구분점을 만들어내며 인류의 문화사가 근대로 이어지는 바탕을 마련했다.
메디치가의 사례처럼 문화예술의 부흥은 단지 인간의 미적 욕구를 채워주는 것을 넘어 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항해 시대의 본격화로 대서양 및 인도양 항로가 개척되면서 피렌체가 거머쥐었던 부는 사라져 갔다. 하지만, 르네상스가 남긴 문화적 변혁이 서유럽과 북미지역 국가들이 현재까지 영위 중인 정치·경제적 우월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문화예술에 대한 메디치가의 아낌없는 후원이 21세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을 향해 아낌없는 호의를 베푼 메디치가의 품격이 그리운 날이다.
임 훈 문화부 차장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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