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딥페이크, 그리고 졸업앨범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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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1-11  |  수정 2024-11-11 07:05  |  발행일 2024-11-11 제23면

[월요칼럼] 딥페이크, 그리고 졸업앨범
장준영 논설위원

문명과 기술 발달에 따른 모든 것의 흥망성쇠는 필연적이다. 정신이든, 물질이든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사실상 예외는 없다. 까마득한 원시시대 이후 이런 흐름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근·현대 들어서는 탄력이 붙은 상태로 지속되고 있다. 휴대폰을 비롯, 스마트워치·홈오토시스템·키오스크 등 수십 년 전만해도 상상조차 힘든 세상이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최근 들어서는 AI(인공지능)가 정점을 찍다시피 하며 빛의 속도로 발전 중이다. 문명의 이기 또는 첨단기술이 인간에게 편리함과 쾌적함, 즐거움과 여유로움 등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작동하지만, 이면에는 생각지도 못한 이런 저런 불편과 불행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세상 이치는 '동전의 양면' 아니던가. 누리는 만큼 감안하고 감내하며 치러야할 부분은 공존하기 마련이다.

기술적 진보를 범죄에 악용하는 딥페이크나 보이스피싱 피해가 갈수록 빈번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어두운 단면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뜬금없지만, 중·장년 이상에겐 수십년 세월이 녹아있는 졸업앨범도 예외가 아니다. 불편한 변화가 감지된 건 수년 전, 딥페이크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부터다. 누구든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기에 '묻지마 폭행'만큼이나 두려운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올들어 지난달까지 교육부가 집계한 교원과 학생 딥페이크 피해자는 이미 900명을 훌쩍 넘어섰다. 한국교총이 최근 전국의 유·초·중·고 교사 3천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0% 이상이 졸업앨범에 실린 사진으로 딥페이크 성범죄에 도용되거나 초상권 침해를 당할까봐 우려된다고 답했을 정도다.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그저 기억일 뿐이다. 게다가 기억은 과거를 낭만화시키는 마력을 갖고 있다. 대부분이 춥고 배고팠던 '까까머리' '검정 교복'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알 수 없는 따뜻함과 그리움이 밀려온다. 사진이나 기록물이 무척 귀했던 시절의 빛바랜 앨범을 들춰보는 일은, 달리 추억할 도구가 마땅찮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가치가 매겨져 있던 졸업앨범이 이젠 누군가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크게 아쉽지 않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SNS와 AI가 전혀 의도치 않게 빚어낸 씁쓸하고도 안타까운 장면이다.

범죄의 지능화 및 고도화는 기술의 발달과 비례한다.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생겨나고, 이는 궁극적으로 다양한 강력범죄를 잉태한다. 예방이 힘들다면 강력한 단속과 처벌은 차선이 될 수 있다.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싹을 자를 수 없음에도 불구, 어설픈 관대함이 사회적 공분을 자주 불러 일으킨다. 지난달 말 영국 법원은 AI 기술을 활용, 어린이 사진으로 음란물을 제작·판매한 20대에게 징역 18년형을 선고했다. 우리나라도 꽤나 강한 관련 법이 있으나 실제 처벌 수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여성가족부 분석에 따르면 2022년 미성년자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 가운데 60% 이상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가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사이 피해자는 진짜 피눈물을 토해낸다.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처벌은 범죄예방 효과와 함께 선량한 절대 다수를 지키는 보루 역할도 한다.장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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