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애스터로이드 시티'(웨스 앤더슨 감독·2023·미국)…이상하고 아름다운 웨스 앤더슨의 세상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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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14  |  수정 2025-02-14 08:25  |  발행일 2025-02-14 제16면
[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애스터로이드 시티(웨스 앤더슨 감독·2023·미국)…이상하고 아름다운 웨스 앤더슨의 세상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애스터로이드 시티(웨스 앤더슨 감독·2023·미국)…이상하고 아름다운 웨스 앤더슨의 세상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1955년 종군기자이자 사진작가인 오기는 죽은 부인의 유골과 함께 애스터로이드에 온다. 인구 87명의 작은 마을 애스터로이드는 오래 전 운석이 떨어져 유명해진 곳이다. 오기는 아이들을 데리고 '소행성의 날' 참석을 위해 이곳에 도착하지만, 뜻밖의 일로 갇히게 되고 이들 앞에는 예측불허의 일들이 펼쳐진다.

영화는 극중극 형식이다. 흑백으로 진행되는 TV쇼의 내레이터가 연극의 시작을 알리면, 화면은 컬러로 변하고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연극이 시작된다. 영화는 연극의 안과 밖을 교차로 보여준다. 극작가와 연출가가 등장하고, 배우는 "이 장면의 의미를 모르겠다"며 무대 밖으로 뛰쳐나오기도 한다. 영화가 난해하게 느껴지는 요소다. 느닷없이 외계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모호한 대사와 장면들이 많다. 이 영화를 향한 호불호는 각자의 자유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팬은 많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영화 팬도 많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대중 예술이지만, 대중보다 예술 쪽에 방점이 찍히는 영화다. 치열하게 자신만의 색깔을 고집하는 웨스 앤더슨 같은 감독 덕분에 영화가 다채로워지고 품격이 높아졌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의 영화 중 '문라이즈 킹덤'(2012)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다. 하지만 지나친 스타일리스트에 완벽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피로감으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이후로는 그의 영화를 찾지 않았다('프렌치 디스패치'(2014)는 보다 말았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오래 마음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래도 사랑 이야기라서 그런 듯하다.

여러 겹의 구조와 낯선 이야기들 탓에 평론가들은 이런저런 해석을 내놓지만,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 것 같다. 그저 내 마음을 건드리는 장면을, 대사를 받아 간직하면 될 것 같다. 부인의 죽음 이후 나타난 새로운 사랑은, 영화 중간 홀연히 나타난 외계인의 출현만큼이나 경이로운 사건이다(나라는 우주 앞에서 타인은 모두 외계인일지 모른다). 그리고 사랑의 상실은 또다른 사랑으로 치유되는 법이다.

오기 역의 배우가 "이 연극의 의미를 모르겠다"며 무대를 뛰쳐나와 연출가에게 묻는 장면이 있다. 연출가는 "의미를 몰라도 좋으니 계속 연기하라"고 답한다. 삶의 의미를 다 몰라도, 그저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인생을 향한 질문이기도, 이 영화를 향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 의미를 다 모르면 어떤가. 우리는 그저 뚜벅뚜벅 인생길을 걸어가야 하고, 이 영화의 낯선 아름다움에 빠져들 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외치는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지독한 영화쟁이 웨스 앤더슨은 영화는 꿈, 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잠과 꿈을 통해 새롭게 깨어나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관의 짙은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고 싶다. 잠을 자듯, 꿈을 꾸듯.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생각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듯 세상 속으로 걸어나가고 싶다. 삶의 의미도, 영화의 의미도 다 알지는 못할지라도.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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