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메일] 因果應報(인과응보), revenge(복수)의 서사를 응원한다

  •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 |
  • 입력 2025-03-17  |  수정 2025-03-17 07:11  |  발행일 2025-03-17 제21면

[월요메일] 因果應報(인과응보), revenge(복수)의 서사를 응원한다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인과응보(因果應報, karma and retribution)는 동아시아 사상에서 중요한 윤리적 원리로, 인간의 행위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불교의 업보(業報) 사상과 유교의 권선징악(勸善懲惡) 개념이 결합된 형태로 한국 문화에 뿌리내렸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복잡한 신분 구조와 그로 인한 갈등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의 사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과거 노비였던 구덕이(임지연)가 양반인 척하며 옥태형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는 과정은 조선 사회의 계급 구조와 역사적 맥락, 그리고 주인공 간의 갈등을 깊이 있게 풀어냈다.

극 중 구덕이의 신분 상승은 과거 주인댁의 잔인한 대우에 대한 간접적 복수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녀의 어머니를 산 채로 묻은 주인댁의 행위는 극의 인과응보를 촉발하는 핵심 사건이다.

그녀의 신분 위장은 단순한 생존 전략을 넘어, 신분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으로 그려진다. 옥씨 부인은 복수를 직접 실행하기보다 공적 질서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응징을 이루어낸다. 그녀가 쌓아온 덕으로 면천을 받고, 가해자들은 왕의 권위를 통해 처벌받는다. 이는 전통 사회에서 복수가 개인적 분노의 해소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 실현의 과정임을 시사한다.

반면, 2022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다룬 현대적 복수극이다. 이 작품은 학교폭력을 단순한 개인 간 갈등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 구조의 축소판으로 제시한다. 특히, 고데기를 이용한 폭력 장면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현실 사회의 폭력성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 드라마는 학교폭력의 잔혹성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가해자들의 부유한 가정 배경, 그들을 비호하는 어른들의 태도, 그리고 피해자의 열악한 환경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그대로 반영했다. 이 드라마에서 문동은(송혜교)의 복수 과정은 현대사회의 계급 구조와 맞물려 있다. 그녀는 가해자들 간의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여 그들이 스스로 무너지도록 만든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보복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 속에서 진행되는 심리적·사회적 복수다. 특히, 법적 허점과 권력 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정당한 응징'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묻는다.

복수(revenge)는 부당한 피해를 본 개인이나 집단이 가해자에게 동일한 고통을 가함으로써 균형을 회복하려는 행위로 정의된다. 철학자 칸트는 복수가 정의 실현의 방식이 될 수 없으며, 복수가 또 다른 폭력을 낳아 악순환을 불러올 뿐이라고 보았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때때로 정의로운 분노와 그에 따른 행동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두 작품에서 복수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과거의 청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와 제도가 보호하지 못한 피해자가 스스로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구덕이와 문동은의 승리는 현대사회에서 피해자로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도 함께 치유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회에서 정당한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이 실현되기를 기대하며, 피해자들의 복수를 응원한다.

'계엄'이 '계몽'으로 바뀌는 시대, 우리는 여전히 인과응보를 기대한다.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