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꽃샘바람에 실려 봄이 온다

  • 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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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17  |  수정 2025-03-17 07:13  |  발행일 2025-03-17 제22면
다시 두툼한 옷을 꺼낸 주말

도시의 봄은 조금 더디지만

예전 같지 않은 봄날의 풍경

사회 갈등 속 봄 멀어 보여도

꽃바람 불며 새 희망 피어나
[아침을 열며] 꽃샘바람에 실려 봄이 온다
박순진 대구대 총장
봄이 오려나 보다. 며칠 사이 낮 기온이 부쩍 오르고 산책길에 만나는 새싹들이 반갑다. 양지바른 언덕에 아지랑이 피어날 때쯤이면 겨우내 메말랐던 나뭇가지마다 물이 오르는 모습이 놀랍다.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연달아 피어날 것이다. 봄이면 어김없이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섭리는 해마다 보아도 경이롭다. 어쩌면 저리 고운 꽃을 일시에 피워내는지, 그 많은 새싹을 한순간에 쏟아내는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겨우내 모진 찬바람을 이겨낸 나무며 풀이며 봄마다 보여주는 진한 생명력에 경의를 표한다.

봄이란 단어는 듣기만 해도 어떤 설렘이 있다. 봄은 생명이 부활하는 계절이자 활기 가득한 신록의 계절이다. 봄에는 한 해 농사를 준비하고 부지런히 씨를 뿌려야 한다. 이맘때 농촌에서는 아지랑이 피어나는 논두렁 밭두렁에 달래며 냉이며 쑥을 캐러 나온 사람들 모습이 정겨운 풍경을 연출한다. 아쉽게도 도시의 봄은 그렇게 즉각적이지는 않다. 도회지 사람들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여 마트 진열대에 올라온 봄나물을 사면서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 묵은 겨울옷을 정리하고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하지만 봄은 매번 그저 오지는 않는다. 주말 사이 기온이 다시 내려가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지난주 낮 기온이 성큼 오르고 날이 풀리길래 겨울옷을 정리할까 생각했는데 지난 주말 다시 두툼한 옷을 꺼내 입었다. 어느 해였던가 봄기운이 완연하여 주말 동안 겨울옷을 몽땅 세탁하였더랬다. 이튿날 갑자기 꽃샘추위에다 뒤늦은 눈까지 내려서 섣부르게 꺼낸 얇은 옷을 입고 덜덜 떨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주말 사이 찬바람에 비까지 내리는 것을 보면서 올해도 봄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러울 것을 은근히 걱정한다.

봄이 오는 것은 정한 이치겠지만 사람들은 봄이 마냥 예전 같지는 않다고들 한다. 학생 때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배웠는데 요즘은 봄은 그냥 오는 듯 마는 듯 지나간다. 느긋하게 봄을 느껴볼 겨를도 없이 어느새 무더운 여름이 된다. 날이 풀리면서 미세먼지가 먼저 다가오고 연이어 황사가 올 것이 걱정된다. 머지않아 봄이 될 것을 알고 있지만 올해 꽃샘추위는 유독 매섭게 느껴진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고 한들 얼어붙은 시민들 마음에 쉽사리 봄이 오지는 않는다. 양지바른 언덕에 봄나물 캐는 모습도 보기 힘들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도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 간의 패권 경쟁이 심해지고 무역전쟁도 날로 험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약육강식이 노골화하는 국제질서의 냉혹함이 무섭다. 이 와중에 우리나라는 시국도 어수선하고 경제 상황도 여간 걱정이 아니다. 사회가 좀처럼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다시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나도 올해 봄은 예전 같지 않다. 쪼개지고 갈라진 민심과 갈등하고 분열된 사회가 좀처럼 평온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봄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부지런한 농부는 논밭을 갈고 벌써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변덕이라고 농사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막을 앞둔 야구장에는 관중이 가득한 것을 보며 그래도 우리네 일상이 이 정도로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잠시 궂은 날씨 때문에 몸을 움츠리고 있지만 곧 꽃바람이 불고 만물이 소생하는 찬란한 봄이 온다. 꽃샘추위가 지나면 볕이 좋은 날을 골라 화사한 차림으로 봄나들이 갈 것이다.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봄이 더 기다려진다.
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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