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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형식 거리활동가 |
민족의 해방 후 혜성처럼 나타난 불세출의 가수 현인의 1948년 히트곡 '비 내리는 고모령' 가사의 일부이다. 유호가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한 이 곡은 어머니와의 이별에 대한 애끊는 슬픔과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담긴 곡으로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대중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1947년 중국에서 귀국한 현인은 '신라의 달밤'을 시작으로 '비 내리는 고모령'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194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 잡는다.
한국 대중가요사를 대표하는 명곡 '비 내리는 고모령'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바로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이다. 인터불고호텔 남편 방면과 팔현마을로 이어지는 고개 고모령(顧母嶺). 한자 뜻을 풀이 해 보면 돌아볼 고(顧), 어미 모(母), 고개 령(嶺)으로 어머니가 돌아본 고개라는 뜻이다. 이 고개에는 여러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중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운동으로 투옥된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던 어머니가 이 고개를 넘으며 아들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아보았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노래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다. 1969년 개봉한 영화 '비 내리는 고모령'은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다. 배우 박노식, 문희, 김희라 주연으로, 당시로선 꽤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이 작품은 김희라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주제가 '고모령을 넘어가며'를 불러 당시 큰 화제였다. 2013년에는 악극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1925년 개업해 80여 년간 시민과 함께한 고모령 인근의 간이역 고모역. 이젠 역으로서 수명을 다하고 2018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옛 정취가 그대로 묻어나오는 고즈넉한 역사에는 고모령과 관련된 각종 콘텐츠와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볼거리, 놀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비 내리는 고모령'과 관련된 음반이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음악 청취 또한 가능하다. 철도 기관사 복장도 착용해 볼 수 있다.
기상청의 날씨 예보에 의하면 이번 주 주말은 20℃ 안팎의 완연한 봄 날씨가 예상된다고 한다. 꽃샘추위가 물러난 화창한 봄날의 주말, 어머님의 손을 잡고 고모령으로 나들이 가보는 건 어떨까? 인근에는 고모역 둘레길도 있어 산책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애환이 오롯이 녹아있는 고모령. 더 이상 이별의 장소가 아닌 만남의 장소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길형식 거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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