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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조조의 중원정복론은 현실 정치에도 유효하다. 중도 확장의 정책적 성공 사례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이다. 좌클릭으로 우군의 영토를 넓힌 박 후보는 1987 헌정체제 후 처음 51.55%의 득표를 획득했다. 유럽 극우 정당의 약진도 복지 강화·노동자 감세 같은 좌파 정책 도입을 통한 중원 공략의 효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의 우클릭 역시 중원을 염두에 둔 포석일 게다. 여당이 전광훈 목사 등 극우 세력과 결탁하는 틈을 타 "민주당의 포지션은 중도보수"라고 규정했다. 이재명 대표는 "국민의힘의 극우 본색이 드러난 만큼 우리가 보수까지 책임져야 한다"며 추임새를 넣었다. 여당을 극우 쪽으로 밀어내려는 복심을 노골화한 것이다.
이념의 영토엔 소유권이 없다. 누구든 "우리 영역"이라 주장할 수는 있다. 다만 정책적 실천이 따라줘야 하는데 민주당의 행보는 의구심을 촉발한다.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예외를 거부했고, 여권에서 '파업 조장법'으로 치부하는 '노란봉투법'을 재발의했으며, 상법 개정안을 기어이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했다. 심지어 '전세 10년 보장 법안'을 민생 의제로 검토하기도 했다. 성장을 외치면서도 반시장·반기업 정체성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래서 민주당의 '중도보수' 선언이 참칭인지 전략인지 헷갈린다. "우측 깜빡이 넣고 핸들은 좌측으로 돌리는 격"이라는 국민의힘의 힐난이 틀리지 않는다.
민주당의 중원 공략 시도는 실용주의와 맞물린다. 이 대표는 이미 지난해 '먹사니즘' 슬로건으로 이재명표(標) 실용주의를 제시했다. 먹고사는 문제는 고금(古今)을 관통한다. 맹자는 '무항산 무항심'이란 경구로 경제 민본주의를 표방했고,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은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안다"고 했다.
민주당 강령엔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고 명시돼있다. 서민·중산층 편에 서려면 지금보다 우클릭해 중용적 정책을 펼쳐야 한다. 유학적 의미의 중용(中庸)은 '도리에 맞는 언행'이다. 중용적 정책도 그냥 보수·진보의 중간쯤 되는 정책이 아니다. 현실과 환경에 최적화된 정책이라야 한다.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트럼프 관세'로 통상여건이 열화하는 상황이라면 기업을 고양할 카드가 필요하다. 52시간 예외 조항을 담은 반도체법 처리는 '중도보수' 민주당의 진정성을 가늠할 시금석이다. 소송 남발이 우려되는 상법 개정안도 유보하는 게 옳다.
결국 민주당 중원 공략의 관건은 언행의 조화다. 중도층 민심의 스펙트럼을 제도와 정책으로 수렴해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개혁과 개헌, 안보 중시가 필요할 테고, 경제적으론 지금보단 더 시장 친화적이어야 한다. 민주당의 확장적 이념 좌표 설정이 '보수 코스프레'로 끝나지 않기 바란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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