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창] 라면보다 더 뛰어난 그 무언가를 위해

  •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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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28  |  수정 2025-03-28 07:06  |  발행일 2025-03-28 제27면
[메디컬 창] 라면보다 더 뛰어난 그 무언가를 위해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문화는 사람이 이주하고 각자의 고유문화를 교류함으로써 발전하고 새롭게 창조된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문화와 관습이 형성되고,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고 섞이면서 새로운 문화가 발생하는 것이 곧 인류 문명의 발달사이다. 세계 각국이 내세우는 자랑거리 중 다른 문화권과의 교류 없이 순수하게 창조된 것은 찾기 힘들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 라면의 발달 과정을 살펴보면 교류에 의한 문화 발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라면의 긴 여정은 중국의 간쑤성(甘肅省)의 성도 란저우(蘭州)에서 시작된다. 란저우에서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손으로 잡아 길게 늘여 여러 가닥으로 만든 수타면의 일종인 납면(拉麵)이 시초다. 란저우에는 아랍계 민족인 회족(回族)이 많이 살고 있어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소고기 국물에 납면 방식으로 만든 국수를 넣어 만든 우육납면(牛肉拉麵)이 발달했다. 이것이 일본의 메이지 시대에 바다를 건너 난킨소바(南京そば)로 변신했다. 요코하마, 고베, 나가사키 등 개항장의 중국인 노동자, 상인, 학생 중심으로 일본 사회에 조금씩 퍼져나가다가 1910년 도쿄의 라이라이켄에서 지금의 라멘과 비슷한 형태로 진화하였다. 이후 중국에서 온 소바(국수)라는 의미로 지나소바(支那そば)로 불리면서 대중화되다가, 북해도에서 수타면 방식의 납면(拉麵)임을 강조한 '라멘(ラ?メン)'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메뉴에 등록된다. 이후 1958년 라멘은 다시 한번 진화한다. 닛신식품에서 인스턴트 라멘을 개발한 것이다. 증기로 찐 국수 면을 기름에 튀겨 말리고, 국수 면에 닭고기를 우려낸 맛의 스프가루를 뿌렸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인스턴트 라면이 탄생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스턴트 라면을 도입한 삼양식품이 1963년 '즉석 삼양 라면'으로 발매하여 한국의 라면 역사가 시작된다. 그 이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끊임없이 개량되고 발전하여 드디어 한국의 대표 음식으로 한류를 타고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라면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문화 교류와 발전, 창조의 표본물이다.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의 문화가 결합하고 발전하여 창조되었다. 누가 더 지분이 있는지는 다툴 수 있겠지만, 오롯이 한 나라의 독점 문화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네오내오 없이 오가다 보면 이웃끼리 친해지고, 서로의 장점을 배우다 보면 새로운 문화가 창조된다. 서로를 이해하니 친밀한 이웃이 되고, 문화가 섞이다 보니 발전한다. 선린우호(善友好)와 문화 교류와 발전은 동전의 앞뒷면 같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COVID19로 지구촌의 교류는 중단되었고, 최근 회복세에 있으나 예전만 못하다. 특히 세계적 경기침체로 해외봉사활동이나 민간교류와 같은 의미 있는 활동이 감소하였다. 대구시 의사회도 매년 도움이 필요한 국가로의 해외의료봉사와 대구시의 자매결연 도시인 히로시마시 의사회와 교류 활동을 해오다가 중단하였다. 최근 대구시 의사회가 재일교포 의사들로 구성된 재일한국의사회 및 히로시마현 의사회와 교류 활동을 재개한 것도 책임 있는 전문가 단체로서 민간 교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류의 세계적 유행은 분명 자랑할 만한 쾌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으슥하여 태만한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한류를 지속시키고 라면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교류하고 더 낮은 자세로 외국의 문화를 배워야 한다. 언제까지 불닭볶음면에 만족하고 있을 것인가.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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