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메일] 잔인한 4월, 위버맨쉬를 기다리며

  • 이원혁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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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07  |  수정 2025-04-07 07:09  |  발행일 2025-04-07 제21면
[월요메일] 잔인한 4월, 위버맨쉬를 기다리며
이원혁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위원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잘 잊게 해 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만물이 싹트고 생성하는 봄의 시작 4월을 '가장 잔인한 달'로 모든 이에게 영원히 각인시켜버린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일부다. 인간은 이렇게 황무지처럼 황폐한데도 자연은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4월을 더욱 잔인하게 느낀 것이리라.

우리나라에서도 제주 4·3사건, 4·19 학생운동, 4·16 세월호참사가 바로 라일락이 피어나는 4월에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2025년 올해는 그 을씨년스럽다는 을사년이다. 인종이 죽고 명종이 즉위한 1545년 어린 명종을 대신해 권력을 잡은 문정왕후가 반대파들을 음모와 모함으로 엮어 대거 숙청한 을사사화, 1605년 안동 일대에 열흘 가까이 내린 비가 경주까지 물바다로 만들었던 안동 대홍수, 1785년 '을사'라는 단어가 가난과 고통을 의미한다고 기록하게 했던 전례 없는 대기근,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강제로 외교권을 박탈했던 을사늑약 등 역사적으로 을사년에는 불행한 일이 많았다.

이번 을사년 대한민국 또한 대통령 탄핵과 함께 시작되었고 축구장 6만여 개가 넘는 면적이 잿더미가 된 역대 최악의 산불과 함께 '잔인한 달'인 4월을 맞았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나는 50년 정도 대한민국에서 살아오면서 한 번도 태평성대를 살아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도 치과를 업으로 삼은 지 30년이 다 돼 가지만 매년 올해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만 똑같이 들었을 뿐 한 번도 경기가 좋아서 동종업계가 호황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을사년, 4월이 잔인한 것이 아니라 매년, 매달, 매일 하루하루가 소리 없는 전쟁이며, 신은 죽었으며, 삶은 고난의 연속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2022년도에는 우울증 진료 환자가 처음으로 100만 명이 넘었고, 정신병원의 증가율이 53.5%로 가장 높았다. 대한민국 사회 정신건강의 위기를 보여주는 일면이다. 나 또한 이러한 위험하고 불안정한 상태를 몇 번 겪어본 경험이 있다.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과정에서 현실적 혼란과 공허함은 당연히 생길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가족과 함께 극복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있다.

나는 G-Dragon의 열혈 팬이다. 주말엔 그를 따라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 아이들과 산책하기도 한다. 음악성은 물론 패션의 독보적인 아이콘이었던 그가 언젠가부터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불안해 보여서 안타깝기도 했지만, 이번 새 앨범 제목이 '위버맨쉬(Ubermensch,초인)'라는 것을 보자마자, '아 역시 GD답다'라고 감탄했다. 내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연예인으로서 겪은 고통과 혼란을 통해 더 강인하고 자유로운 존재, 니체의 말대로 신은 죽었으나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인 위버맨쉬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어서 뿌듯했다.

이제 4월의 봄날이 시작되었다. 어느 장소, 어떤 위치에서든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고뇌하고 극복하는 위버맨쉬가 곳곳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엘리어트의 시보다는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시인의 시가 우리에겐 있다. 이념과 체제, 허위의 껍데기는 벗겨지고 희망차고 따뜻한 봄날의 4월이 대한민국에 만개하길 기원해 본다. 이원혁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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