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복수초

  •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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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08  |  수정 2025-04-08 07:43  |  발행일 2025-04-08 제22면
[3040칼럼] 복수초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복수초는 '복(福)'과 '장수(長壽)'를 축원하는 꽃으로, 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다. 4~6㎝ 크기의 밝은 황색 꽃이 줄기 끝에 한 송이씩 피어나는 복수초가 열흘 전 개화했다. 추운 겨울 거의 모든 식물이 잠들어 있을 때 홀로 눈을 녹이며 가장 먼저 피어나 '소빙화(消氷花)', 눈 속에 피어 있는 연꽃이라 해서 '설연화(雪蓮花)'로도 불린다. 꽃이 황금색 잔처럼 생겼다고 해서 '측금잔화(側金盞花)'로 불리기도 한다. 대구 팔공산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복수초 군락지가 있어 필자 역시 지난 3월 팔공산의 복수초를 찾아 복(福)을 기원한 바 있다.

복수초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과 '슬픈 추억'으로 일본 훗카이도 원주민들 사이에는 이 꽃에 얽힌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진다. 설화에 따르면 훗카이도에 살고 있던 아름다운 공주 크노멘이 두더지 왕자와 결혼을 하라는 아버지의 강권에 반발하여 궁을 떠난다. 두더지 왕자는 공주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공주의 이름을 새긴 금비녀, 실을 한 땀 한 땀 직접 뽑아 만든 비단옷을 선물하며 공주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공주는 그의 못생긴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두더지 왕자가 없는 먼 곳으로 도망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북풍, 소나무, 곰에게 부탁한다. 이에 공주의 아버지는 분노하여 "제멋대로인 너를 더 이상 내 딸이라고 여기지 않겠다. 내가 내리는 벌을 받아라"하며 그녀를 풀로 변하게 했는데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복수초라고 전해진다.

믿거나 말거나. 설화(說話)일 뿐이지만 두더지 왕자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눈물, 딸을 풀로 만들어버린 아버지의 분노, 공주의 철없는 사랑스러움 한 꼬집 버무려 작지만 강한 봄의 전령이자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꽃이 된 이야기는 인간사 이치의 역설을 보여준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피어난 꽃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복수초는 복수초를 찾는 등산객들에게 기쁨을 주니 저주 자체로서 우리에게 선물이 되었다.

2024년 겨울의 끝자락 우리는 모두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다. 조직 내 갈등, 국내·외 경쟁사와의 치열한 싸움, 경제 불황, 지역 기업들의 구조조정, 국가 존폐 위기감을 느꼈던 혼란스러웠던 시국, 의료 공백, 외교 위기, 이례적인 자연재해. 유난히 춥고 길게 느껴졌던 겨울이다.

신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소중한 것임을 알게 해주려고 때로 천재(天災), 인재(人災), 개인적인 어려움을 경험하도록 하는 걸까 의구심을 가져본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 공기처럼 느꼈던 민주주의와 국가, 사랑하는 가족과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는 시간 등 거저 주어지는 건 하나도 없었음을 상실과 부재를 통해 깨달으니 이 또한 혹독한 역설일까.

작년보다 5일, 재작년보다 15일 늦긴 했지만 올해도 복수초는 개화했다. 복수초는 명리학적 관점에서 '금(金)'의 기운을 상징하는 꽃인데 금의 기운은 잘못된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운이자 인간 내면의 강인함과 인내를 의미한다. 복수초가 이른 봄 눈을 녹이며 피어나 추운 환경에서 강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과 유사하다.

슬픔, 분노, 사랑 한 스푼씩 버무려 얼음눈을 뚫고 피워내는 금빛 복수초처럼 올겨울 우리가 겪었던 혼란과 상처로 한 뼘 더 성장하고 한 마디 더 성숙했을 우리들의 봄이기를 기대해 본다. 4월과 5월에 이어 피는 너도바람꽃, 모과나무꽃, 이팝나무꽃, 패랭이꽃을 찾아 운동화 끈을 다시 동여매고 산으로 나서본다.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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