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전쟁이 아닌 콘클라베, 편 가르기가 아닌 선거

  • 정혜진 변호사
  • |
  • 입력 2025-04-10  |  수정 2025-04-10 07:07  |  발행일 2025-04-10 제22면
민주주의의 선물은 다양성

통합을 막는 치명적인 적은

의심 없는 확신의 현실 왜곡

자신의 편만이 옳다고 믿고

확신 깊을수록 왜곡도 커져
[더 나은 세상] 전쟁이 아닌 콘클라베, 편 가르기가 아닌 선거
정혜진 변호사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다양성이고,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의심 없는 확신은 통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

교황이 갑자기 선종하고 전 세계 추기경들이 모인 콘클라베(교황 선출 비밀회의) 첫날, 추기경 단장 로렌스의 설교 내용은 다소 당황스럽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확신이 죄라고? 신에 대한 믿음을 최우선으로 하는 종교공동체의 수장이 될 수 있는 예비 후보들에게 확신은 오히려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질이 아닌가.

영화 '콘클라베'는 가상의 콘클라베를 소재로 한 정치 스릴러다. 포스터의 강렬한 색감에 끌려 보러 갔다가 저 대사에 사로잡혔다. 평범한 일상을 흔들어버린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파면, 그리고 조기대선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곱씹어보진 않았을 것이다.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선물은 다양성이고, 무엇보다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바로 확신이다. 의심 없는 확신은 사회 통합의 치명적인 적이다." 감독이 무엇을 의도했든 무슨 상관이랴, 해석은 관람자의 마음이지(이 영화가 정치 스릴러로 소개되고 있다는 걸 보면 내 해석도 아주 방향을 벗어난 건 아닌 것 같다).

영화에는 '의심 없는 확신'에 차 있는 교황 후보들이 등장한다. 교회가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진 테데스코 추기경과, 그런 보수는 절대 교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테데스코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슨 수든 써야 한다고 호소하는 벨리니 추기경도 그중 일부다. 로렌스 추기경이 벨리니 추기경에게 말한다. "이것은 콘클라베입니다. 전쟁이 아닙니다." 벨리니가 바로 응수한다. "이건 전쟁입니다!" 한 사람이 3분의 2 표를 얻을 때까지 반복되는 지난한 투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콘클라베는 전쟁과 유사했다. 이편과 저편으로 나뉘었고, 거짓말과 술수까지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유력 후보들이 하나둘 무너진다. 그들을 무너뜨리는 건 상대 후보가 아니라 그 자신이었다. 자신이 한 행동 혹은 자신확신에 가득 찬 말로 인해 무너졌다.

확신 자체가 아니라 '의심 없는 확신'이 문제다. 이것이 옳기에 저것은 들어볼 필요조차 없다는 확신, 저 사람(혹은 특정 상태나 입장)만은 안 된다는 확신. 우리는 역사에서 확신의 비극을 종종 목격해왔다. 아리아족 순수 혈통의 우월성을 확신한 나치가 대표적이다.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번에 파면된 대통령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위기를 '호소'하던 자기 확신이 자충수를 불러왔으니 말이다. 의심 없는 확신은 왜 위험한가. 그가 가진 생각이나 의견이 그 자체로 옳지 않아서가 아니다. 자신 혹은 자신의 편'만'이 옳다고 믿는 '태도'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의심 없는 확신은 현실 인식에서 왜곡의 틈을 만들고, 확신이 깊어질수록 왜곡도 커진다. 결국 실제와 그 인식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발생하는데, 정작 자신은 그걸 모른다.

파면된 대통령뿐이 아니다.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겠다고 자처하는 대선 후보들, 그리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도 '의심 없는 확신'에 빠져 있다. '알고 보니 그에게 지도자의 자질이 전혀 없더라'를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겪을 만큼 겪었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 사회는 잘 알고 있다. 전쟁이 아니라 콘클라베이듯, 편 가르기가 아닌 선거여야 한다.
정혜진 변호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