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Peak Korea'의 어두운 그림자

  • 권업 객원논설위원
  • |
  • 입력 2025-04-11  |  수정 2025-04-11 07:05  |  발행일 2025-04-11 제26면
상호관세와 가계부채 위기

불모지서 일궈낸 철강처럼

보수·진보의 진영을 넘어서

'國利民福' 실용적 능력 갖춘

국가리더 어느 때보다 절실
[경제와 세상] Peak Korea의 어두운 그림자
권업 객원논설위원
헌재 판결은 내려졌지만, 4개월 넘게 탄핵정국이 휘몰아친 대한민국 경제 앞엔 오히려 안개가 더욱 짙어가고 있다. 재선거까지 피할 수 없는 카오스 정국과 재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유지 또는 변경되느냐에 따라 정책이 크게 바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시장과 경제 전반에 걸친 불확실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짧게는 재선거가 예정된 6월까지, 길게는 다음 정부의 정책 방향이 정립될 때까지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길이다.

현재 우리가 해결해야 할 최대 현안과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던진 관세 폭탄과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2년 이후 최대치로 늘어난 가계부채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부과한 25%의 상호관세는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핵심 먹거리 산업뿐 아니라 전 산업에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커지면서,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간 줄 탄핵과 대통령 직무정지에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까지 국정공백이 이어지며 트럼프 취임 전부터 이미 예고된 미국의 관세정책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금쪽같은 시간만 허비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각자도생하려 사투를 벌여왔지만 역부족이다. 또 지난해 말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9천553만원으로 사상 최대이자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1.7%로 세계 38개국 중 캐나다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세계 신흥시장 평균(46.0%)이나 세계 평균(60.3%)을 크게 웃돈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면 대출 이자를 감당하느라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 부진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경제가 침체되는데 원자재 가격 상승에 원·달러 환율까지 올라 물가가 치솟으면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이 기다린다.

"윤 대통령의 짧은 정치 경력은 끝났지만, 수 개월간 한국이 겪은 혼란의 종말은 아닐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는 예견하고 있다. 막스 베버는 진영 간 권력투쟁이 정치인의 본령이기는 하지만 투쟁의 당사자인 정치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질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미래지향적인 현실 변혁을 시도하는 열정, 현실을 바라보되 객관·타당하게 판단할 수 있는 식견, 정치적 의사결정의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다. 한마디로 '국리민복'을 향한 강한 의지를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에서 진영 간 갈등을 초월하여 시급한 국가 과제인 상호관세와 가계부채 문제는 물론 '괴물 산불' 피해 대책에 대해 진지한 숙의를 하는 모습은 우리의 기억에 없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존경받는 정치인이자 기업인이다. 그의 이데올로기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전쟁 때는 군인으로 조국을 지켰고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자본도 기술도 없는 철강 불모지에서 포스코를 설립하고 키웠다. 일본의 식민지 배상금으로 지어진 포스코는 단기간에 세계 유수의 일본 제철소들을 누르고 말로만 반일이 아닌 실질적인 극일에 성공했다. 또 국가재난이었던 IMF 외환위기 당시 보수·진보를 초월하여 그가 보여준 노력은 아직도 우리 뇌리에 선명하다. 태백산맥을 쓴 소설가 조정래는 2007년 자신이 집필한 어린이 위인전의 15명의 위인 중 한 명으로 박태준을 넣었다.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서 지금 우리 사회를 짙게 드리우고 있는, 이것이 우리의 한계라는 'Peak Korea'의 어두운 그림자를 깨부수는 통합의 리더십과 실용적 해결능력을 갖춘 리더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권업 객원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