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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
5년 임기의 대통령은 장기 비전을 세우기도 전에 레임덕을 맞고, 국가적 과제는 정권 교체 때마다 단절된다. 책임정치는 사라지고,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포퓰리즘이나 금전살포만이 횡행했다. 대통령은 스스로 책임에 대한 평가를 받지도 않고 임기를 마치며, 정권의 성공이나 실패는 정당의 정책보다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역량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중임 허용 또는 이원집정부제 도입 같은 대안들이 꾸준히 논의되었지만, 현실 정치권은 이를 외면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는 권력 분산이나 책임 정치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말을 해왔지만, 정작 헌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되자 침묵하거나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에 그는 "지금은 내란 극복이 우선"이라며, 개헌 논의를 잠재웠다. 이는 명백한 정치적 계산이다.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는 이 대표의 결정으로 개헌이 이루어질 수 있는 최상의 상황임에도 개헌을 거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개헌이 본격화되면 대통령 권한 분산, 내각 책임제, 총리 강화 같은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불가피해진다. 이는 차기 권력 구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역시 제왕이 되고 권력독점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는 개헌이라는 국민적 요구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우선시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과거에는 단임제의 한계를 지적하고, 책임정치를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기상조"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는 곧 있을 대통령선거에서 탄핵의 반사적 이익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현행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나누기 싫고 선거의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기회주의적 행태야말로 헌법 개정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전형적인 모습이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자신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개정은 정치적 도박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을 정비하는 중대한 책무다. 대통령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개헌에 손대지 않는 정치권은 국가의 미래보다 개인적 이익을 우선하고 있다. 철저한 이기주의의 표본이다. 불편한 개혁은 피하고 정략만 따지는 정치인은 더 이상 '개혁가'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정치인의 진정성은 위기의 순간, 불편한 논쟁 속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개헌을 회피하는 리더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국가를 더 위기에 빠뜨릴 뿐이다.
정치권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한 법률개정은 열심히 한다. 선거구 조정,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정 등 자신들의 이익이 걸린 사안에는 기형적인 선거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국민을 위한 헌법 개정, 즉 국민 기본권 확대나 권력 구조개편, 지방분권 강화 같은 문제에는 침묵하거나 회피하며 무관심이다. 이 얼마나 비겁한 이중적 태도이고 위선인가. 시대는 바뀌었고, 정치도 변해야 한다. 이를 가로막는 자들이야말로 구시대의 잔재이며, 개혁의 적이다.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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