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홍준표와 진중권의 협력?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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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22   |  발행일 2020-12-22 제22면   |  수정 2020-12-22
김대중·노무현의 승리는

김종필·정몽준을 껴안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결실

홍준표와 진중권의 협력도

상상할 수 있는 게 현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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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교육인재개발원장 겸 CEO 아카데미 부원장

홍준표만큼 유권자의 호불호(好不好)가 엇갈리는 잠룡도 없다. 어떤 이는 '이미 흘러간 물이다. 대권 후보도 될 수 없다'고 혹평한다. 또 다른 이는 '결국에는 홍준표가 대권을 차지할 것이다. 대권을 못 쥐면 당권이라도 쥔다'고 장담한다.

'진보 논객' 진중권만큼 보수층이 좋아하는 인사도 드물다. '조국 사태' 이후 민주당 정권을 비판하는 그의 글에 보수층은 환호한다. 국민의힘 소속 어떤 의원의 언행보다도 진중권의 글에 속 시원해한다. 진중권이 공격하는 정치인 중에는 홍준표도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홍준표와 진중권의 협력. 얼마 전 지인이 필자에게 던진 화두다. 정치는 상상력이며, 상상력은 풍부할수록 좋다는 말을 곁들이면서 건넨 말이다. 협력의 목표는 보수의 정권 창출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선거 때 이미 파격적인 조합이 있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단일화 합의. 인권 변호사 출신의 진보 인사인 노 후보와 재벌가 출신의 보수 인사인 정 후보가 각자 자신의 승리를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노 후보로 단일화됐지만, 투표일 전날 밤 정 후보는 단일화 무효를 선언했다. 정 후보의 단일화 무효선언은 보수 진영을 느긋하게 만들었다. 반면 진보진영의 표는 결집시켜 노 후보가 승리했다.

진보와 보수의 조합은 1997년 대선 때도 있었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자유민주연합의 김종필 총재와 연대해 승리했다. 대한민국의 첫 진보 대통령은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과의 연대를 통해 탄생한 것이다.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신한국당 후보가 당선된 배경에는 2년 전의 3당 합당이 있었다. 1990년 1월22일,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은 합당을 했다. 민주화와 군부 종식을 위해 투쟁했던 김영삼이 군부 출신의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손을 잡은 것이다. 김영삼은 자신의 정체성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 노태우·김종필과의 연대를 통해 대통령이 됐다.

이런 전례가 있기에 홍준표와 진중권이 협력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현실적인 정치적 위상에서야 진중권이 홍준표를 따라올 수는 없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누가 더 많은 팬을 갖고 있느냐가 권력이 된다. 디지털 세상에서 진중권은 이미 상당한 권력을 가졌다.

필자가 홍준표와 진중권의 협력을 거론하는 건, 이들의 조합이면 기대를 걸만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치 현실을 볼 때, 윤석열 검찰총장이 보수진영의 대권 후보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과 고건 전 총리의 경험이 있다. 홍준표는 지지율 5% 안팎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보수진영 잠룡 중엔 가장 높다. 또 열렬 지지층도 있다.

지금은 진중권이 홍준표를 비판한다. 하지만 '조국 사태' 이전 진중권은 보수 진영이 싫어하던 인사였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논리적이고 명쾌한 언어로 보수진영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한다. 홍준표와 진중권의 협력 운운하는 게 지금은 코미디 같지만, 코미디 같은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 정치판이다. '적(敵)의 적(敵)은 동지'라는 말이 가장 많이 적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김진욱 교육인재개발원장 겸 CEO 아카데미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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