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장효조와 임신근을 기억하다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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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30   |  발행일 2021-09-30 제23면   |  수정 2021-09-30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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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중부지역본부장

고인(故人)이 된 대구 출신 야구인 가운데 불세출(不世出)의 2인을 꼽으라면 누굴까. 올드팬은 이견이 없을 게다. 임신근(1949~1991)과 장효조(1956~2011)다.

임신근은 대구의 원조 격 야구천재다. 1967년 한 해, 임신근이 마운드를 지킨 경북고는 대통령배 등 4개 대회를 휩쓸었다. 빼어난 컨트롤러였다. 던지는 족족 상대 타자를 더그아웃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해병대에서도 실업야구 다승·승률 1위(1972년)를 찍었다. 이후 타자로 전업, 봄·가을 평균 타율 4~5할로 타격왕(1976년)이 됐다. 지금으로 치면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급 '이도류(二刀流·투타 겸업 선수)'였다. 그는 프로야구 원년 삼성 라이온즈 멤버였다. 쌍방울 코치 때인 1991년, 안타깝게도 구단 버스 안에서 돌연사했다. 장효조. 설명이 필요 없는 대구 야구의 초특급 레전드다. 프로야구 통산 타율 3할3푼1리로 역대 1위. 그래서 '안타 제조기'라는 별호(別號)가, '방망이를 거꾸로 들어도 3할'이라는 수식구가 붙여졌다. 하지만 말년은 팬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본의 아니게 삼성에서 롯데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그는 1992년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영원한 삼성맨'을 꿈꿨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것. 2011년 암 투병 끝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대구 야구의 두 전설을 소환한 것은 이 9월이 가기 전, 꼭 해야 할 얘기가 있어서다. 두 분이 세상을 버린 달은 공교롭게도 9월(7일 장효조·17일 임신근)이다. 그러나 지난 한 달 대구 어디에서도 이들을 기리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결코 지나쳐선 안될 장효조 타계 10주기인 지난 7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데면데면히 경기만 펼쳐졌다. 이날이 전설이 떠난 날이라는 것을 팬들은 TV 중계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코로나19 탓일까, 무관심해서일까. 그를 추모하는 이벤트는 없었다.

부산은 달랐다. 롯데 자이언츠의 전설인 고(故) 최동원의 10주기(2011년 9월14일 타계)에 맞춰 다양한 추모 행사가 열렸다. 그를 다룬 다큐 영화도 개봉(11월)을 앞두고 있다. 롯데는 해마다 그의 기일(忌日)을 전후해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도 지난 12일 부산 사직구장 최동원 동상 앞에서 헌화식이 펼쳐졌다. 이날 경기 직전 구단은 추모 영상을 내보내고, 그를 기리는 대형 걸개그림을 외야석에 설치했다. 전설을 극진히 예우하는 롯데 구단의 마인드가 가상하다. 삼성이 롯데보다 순위에선 앞서 있지만, 야구단의 품격은 한참 뒤처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올해 초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홈런왕 행크 에런이 86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다.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성명을 내고 고인을 추모했다. 할리우드 영화 '꿈의 구장'이란 게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최대 승부조작 사건인 '1919년 블랙삭스 스캔들'이 소재다. 지난달 개봉 32주년을 맞아 영화 속 옥수수밭에서 공식 경기를 펼치는 이벤트가 열렸다. 과거 스캔들에 연루된 야구인까지도 영화와 이벤트를 통해 혼을 달래려는 배려심에 적이 놀랐다.

'어린이에겐 꿈을, 젊은이에겐 정열을…' 한국 프로야구 원년 캐치프레이즈 일부다. 꿈과 희망은 과거와 현재의 지속적인 소통 속에서 실현된다. 늦었지만 삼성 구단은 지금부터라도 정중히 '전설'을 모셔라. 구단이 더는 남 일처럼 무관심해선 안 될 일이다. 롯데를 벤치마킹하라. 연례 추모 행사 개최, 동상 건립, 다큐 영화 기획 등이 그것이다. 장효조·임신근이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 대구의 젊고 어린 야구팬이 인식하고, 올드팬이 추억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이다.
이창호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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