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밀레의 '이삭줍기'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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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27   |  발행일 2021-10-27 제27면   |  수정 2021-10-27 07:08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대표작으로 '이삭줍기'가 있다. 일명 '이발소 그림'이라 할 정도로 과거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림이다. 추수가 끝난 황금빛 들판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 '이삭 줍는 여인들'로도 불린다. 그림의 앞부분은 농촌의 실제 생활을, 뒷부분은 아름다운 자연과 목가적인 농촌을 그려 보는 이들에게는 고향의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실제 이 작품은 당시 농촌의 심각했던 식량난의 실상을 보여준다. 하나의 이삭이라도 더 주우려 애쓰던 농민의 고통이 담겨 있다. 이삭도 마음대로 주울 수 있었던 게 아니라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뒤에는 말을 탄 감독관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감시받는 모습이란 해석도 있다. 이삭을 줍기 위해 계속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 한 여인은 허리가 아픈지 허리를 펴고 잠시 쉬고 있다. 노동의 경건함은 물론 먹거리의 소중함까지 되새겨보게 한다.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이 가을철 수확에 총력을 쏟고 있다고 한다. 노동신문은 최근 '완강한 의지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며 총돌격' 제목의 기사에서 "10월 들어 비가 자주 내린 것을 비롯한 불리한 날씨 조건은 가을걷이와 낟알 털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며 전국의 추수 현황을 보도했다. 북한의 대표적 쌀 생산지인 황해남도에서는 각 시·군이 농작물 생산량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앞선 추수 경험을 공유했다는 기사도 덧붙였다. 지난해 대북 제재 장기화·코로나19·수해로 인한 삼중고를 겪은 데 이어 올해도 극심한 폭염, 부족한 알곡 생산량에 따른 식량난이 가중돼 가을철 수확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 지역의 수확 과정과 관련해 "탈곡기 이용 계획을 철저히 세워 탈곡 속도를 높였다"라며 "한 알의 낟알도 허실 없이 제때 거두어들이기 위한 사업을 짜고 들었다"고 전한 대목에서 밀레의 이삭줍기가 문득 떠오른다. 19세기 일어났던 가슴 아픈 일이 북한에서는 21세기 들어서도 끝나지 않고 있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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