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영호남 상생 서화 연대기(2)…20세기 남종화, 21세기 단색화…전통과 현대 융합한 'K-아트' 꿈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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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6   |  발행일 2021-11-26 제34면   |  수정 2021-11-2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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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 김만호가 현판체로 적은 '봉강재(鳳岡齋)', 소헌의 해서체는 전라도와 달리 영남 사대부의 웅혼함과 고졸함이 태백산맥처럼 우뚝한 기운을 뿜어낸다. 〈소헌미술관 제공〉
작가의 흥취가 글씨보다 그림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자연스럽게 '산과 강(山河)'을 품게 된다. 그게 한때 동양화의 요체가 됐던 '수묵 산수화'. 물론 이 산수화가 민초의 일상까지 포함하면 풍속화, 민화 등으로 변화를 하게 된다. 산수화 속에도 붓글씨가 들어가는데 그게 바로 '화제(畵題)'다. 글씨가 주인이냐 그림이 주인이냐에 따라 서예가와 서화가로 나눌 수도 있다.

전주 세계서예비엔날레 눈길
예천 출신 권창륜과 전주 출신 박원규
전통·현대 융합한 '천인천각' 선보여
영호남 서화의 새로운 도약 신호탄

영호남 서화의 과거와 미래
교류 물꼬 터준 사람은 소헌 김만호
환갑축하 25인 휘호 병풍, 교류 상징
전라도 산수는 추사와 소치의 기운
야송·소산, 영남 산수화 신지평 열어
솔거미술관, 내년 한국화 세계순회전
美 LA서도 韓미술전 2차례 열릴계획
한국화의 판도 바꿀 '빅 이벤트'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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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출신의 유당 정현복(1909~1973)이 50세에 적은 진주 촉석루 현판 글씨. 광복 이후 전국구 국전 초대작가로 활동하다 일찍 타계해 명성이 덜 알려져 있다.
◆일본으로 미술 유학

15세기 유럽에서는 빠르게 물감(유화)이 만들어진다. 1868년 서양식 일본의 신기원이 된 메이지 유신의 심장부로 그 물감이 밀려든다. 문방사우밖에 모르던 일제강점기 한국인 유학생은 일본 현지에서 이젤·캔버스·물감을 접하게 된다. 먹물과 물감이 미학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20세기 초 비로소 한국형 회화가 발흥하게 된다.

1920년 이 나라에서 처음 '동양화'란 말이 등장한다. 이 동양화는 서양화와 구별하기 위해 1981년부터 '한국화'란 명칭을 갖게 된다. 이젠 동양도 서양도 없다. 설치미술, 개념미술, 공공미술, 팝아트 등 별별 미술 장르가 다 생겨났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도 무의미. 캔버스를 떠난 신종 미술이 수두룩하다. 1960년 초 앤디 워홀의 팝아트가 상종가를 칠 때 '현대미술의 종언'이 선언된 바 있다.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인지도를 가진 서예가와 화가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둘 다 예천 출신이다. 그 두 사람은 한국서예단체총연합회장인 초정 권창륜(78), 그리고 국전 반대 운동을 주도했고 1970년대 한국 단색화의 기수이자 홍익대 미대 산파역인 박서보(90)다. 그리고 의재 허백련이 1977년 타계하면서 추사의 수제자가 된 소치 허련(1808~1893)에서 시작해 그 아들 미산 허형-손자 남농 허건-증손자 임전 허은, 의재의 손자인 허달재로 이어진 소치 일가의 전라도 수묵산수화의 명맥도 현대미술의 급습을 받고 숨 고르기 단계에 들어간다.

겸재 정선에서 발원한 한국 진경산수화의 기운. 추사를 촉매로 전해진 전라도 산수화보다 야송 이원좌(1939~2019)와 소산 박대성(1945~)한테 더 강력하게 스며들게 된다. 둘은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다. 한국에서 가장 큰 가로 46곒 세로 6.7곒 '청량대운도'는 야송만의 '시점 이동 산수화'의 신기원. 한국 산수화의 백미였다. 의재와 남농의 산수화는 영남의 야송과 소산의 산수화를 만나면서 영호남 서화는 신지평을 확보한다. 넷 모두 서울을 거점으로 삼지 않고 광주와 목포, 청송과 경주에 배수진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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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과 호남의 서화는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의 산수화와 글씨를 토대로 석재 서병오, 회산 박기돈, 긍석 김진만, 죽농 서동균, 소헌 김만호, 그리고 전라도는 소치 허련을 필두로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의재 허백련, 그리고 전주 서예는 강암 송성용, 석전 황욱, 남정 최정균, 여산 권갑석, 운봉 이재수 등을 축으로 한국화의 신지평을 열어갔다. 올해 13회를 맞는 전주 세계서예비엔날레에서는 예천 출신 초정 권창륜, 전주 출신의 하석 박원규의 기운이 영호남적으로 소통돼 '천인천각천자문'으로 피어났다. 〈전주 세계서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제공〉
◆전라도 산수의 맥

전라도 산수의 맥은 특이하게 추사 김정희와 그의 제자 소치 허련의 기운이 상생해 만들어 낸 문인화 기풍의 수묵산수화였다. 좀 부풀려 말해 20세기 한국 서화의 축이 단연 진도-목포-광주-전주를 연결하는 전라도였다면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야송과 소산 덕분에 영남의 서화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은 셈이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영남의 서화는 온통 현대미술에 잠식된 것 같다. 그 흔한 근대미술관 하나 짓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제대로 된 국제적 서화 관련 비엔날레 하나 잉태하지 못했다.

올해 13회를 맞는 전주 서예비엔날레가 아주 뜻깊은 전시를 선보였다. 서두를 장식한 '천인천각천자문'이란 전서체 글씨는 초정 권창륜, 그리고 말미에 놓인 작품 설명 발문은 강암 송성용의 제자로 상경해 서예의 전통성과 현대성을 융합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하석 박원규가 적었다. 국내 770명, 중국에서 230명이 한 글자씩 골라 돌에 각을 해서 집행위 측에 보낸 것이다. 이 작품이 바로 한국서예의 총체적 호흡, 특히 영호남 서화의 새로운 도약대를 의미하는 신호탄으로 보였다.

◆남도 남종화의 맥

고래로 동아시아 화가의 존재방식은 크게 둘이다. 국가의 그림 제작 관청인 '도화서'에서 직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원', 그리고 취미로 자신의 사색의 깊이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사대부 전유물이랄 수 있는 문인화가 있다. 전자는 국장, 국혼 및 국가의 주요 행사와 관련된 의궤도(儀軌圖), 초상화, 양반들의 아회(雅會) 같은 실용적인 걸 주로 그리는데 이를 '북종화' 계열, 후자 문인화를 '남종화'로 분류한다. 그런데 명나라 회화이론가 동기창(1555~1636)은 '남북종화론'(소치 허련·김상엽 저, 돌베개, 2008년)을 통해 남종화의 우월성을 주창하게 된다.

전라도 남종화의 단초가 된 소치 허련은 진도 출신의 무명 화가였다. 28세 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윤두서의 후손 윤종민과 김정희를 소개받는다. 이후 소치는 뛰어난 그림 솜씨에 시와 서예를 겸비하게 되면서 조선 화단의 다크호스가 된다. 40세를 전후해서는 여러 차례 헌종 앞에서 그림을 그려 바쳤다.

남도 남종화의 총사령부가 처음에는 진도 운림산방이었다. 이유가 있다. 소치는 1856년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에 내려와 초가를 짓고 터를 잡는다. 그는 더 이상 중국의 산수화 화풍을 답습하지 않고 조선 회화만의 특성을 잘 살린 화가였다. 허련의 화풍은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이 독특하였는데 붓을 다루는 솜씨가 강직하였고, 구도 및 수묵의 농암 표현이 자유분방하였다. 따라서 허련 이후부터 조선 남종화가 중국 남종화 화풍에서 벗어나 조선 남종화만의 특성을 지닌다. 허련의 특성은 아들 미산 허형을 거치고 그 아들인 남농 허건에게 전해진다. 허건도 실험적이었다. 고답적인 조선의 회화 양식에서 벗어나 특유의 '신남화(新南畵)'라는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 내었다. 허건의 동생 허림은 일본 유학 중 사물을 점으로 표현하는 '토점화'라는 독창적인 화법을 발전시켜 일본 화단에서 주목을 받았으나 요절한다. 임전 허문은 소치의 고손자. 구름과 안개의 움직임을 수묵 담채로 잡아낸 동적인 한국화 '운무(雲霧) 산수'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이 흐름에서 파생된 대가가 바로 의재 허백련이다. 남농은 목포, 의재는 광주를 축으로 1938년 창설한 '연진회'를 통해 제자를 양성해 호남을 예술의 본고장으로 만든다. 개괄적으로 볼 때 전남은 산수화, 전북은 서예, 영남은 문인화 계열이 강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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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암 송성용이 그린 '죽림도'. 서양화식 원근법이 적용돼 훗날 그의 대표적 문인화로 불리게 된다.〈강암서예관 제공〉
◆영호남 서화의 교류

1922년 불세출의 서예가 석재 서병오가 대구에서 '교남시서화 연구회'를 만들 때 직접 작품을 출품하면서 교류를 하기 시작한 사람은 의재 허백련이었다. 결정적으로 영호남서화 교류의 물꼬를 터준 사람은 봉강 문하를 일군 소헌 김만호. 현재 소헌미술관을 지키고 있는 그의 아들 김영태가 그 사정을 지역 신문을 통해 알렸다.

죽농 예서
1920년대 석재의 작품. 글자마다 결구와 장법이 조화롭게 엮어져 있다. 석재 도록에서 발췌

소헌의 필명이 알려진 건 1960년대부터. 이때 원곡 김기승, 일중 김충현, 어천 최중길, 동강 조수호, 여초 김응현, 전주 송곡 안규동, 한학자 이가원과도 교분이 두터웠다. 1976년 국전 인연으로 만난 광주의 송곡 안규동과 의기투합 영호남교류전을 시작하게 된다. 88고속도로도 없던 시절이라 그 교류는 끈끈할 수밖에 없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문에 잠시 중단 위기도 맞았지만 곧 재개됐고 그 흐름이 달빛동맹으로 개화된다. 60년대 대구 서예계의 중심축이었던 '해동서화협회'의 소당 김대식, 목산 나지강, 계전 최현주, 죽농 서동균, 학연 문기석, 삼우당 김종석, 희재 황기식, 긍농 임기순 등도 전라도 서화인과 교류를 했다. 소헌이 이끌던 봉강서도회는 1968년 전국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제1회 봉강서도회서예전으로 확고한 기반을 갖게 된다. 소헌 환갑 때는 전국구 서예가 25인이 축하 휘호를 보내왔다. 전라도에서는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 송곡 안규동, 강암 손성룡. 이밖에 당시를 호령하던 일중 김충현과 여초 김응현도 동참했다. 이 작품들은 한데 합쳐져 25인 합작 '송수병'으로 태어나게 된다.

재평가 되어야 할 서예가가 있다. 유당 정현복이다. 진주 촉석루, 해인사 해인총림 현판 글씨를 썼다. 천석 재산을 서예를 위해 다 쓸 정도로 붓글씨에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촉석루는 유당이 50세 때 쓴 작품으로 원래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글씨로 만들었으나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그 글씨를 깎아내고 유당의 글씨를 새로 새겼다고 한다. 작품 하나를 건지기 위해 500장을 썼다고 한다.

◆영호남 서화는 단색화를 낳고

21세기 추사 정신을 들라면 나는 '한국 단색화(Monochrome painting)'를 들고 싶다. 1972년 한국미술협회 주최 제1회 앙데팡당전이 그 시원이다. 이때 이동엽의 '상황', 허황의 '가변의식'이 단색화의 첫 징후라고 미술평론가 윤진섭이 지적했다. 2000년 제3회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한일현대미술단면전'. 이후 단색화가 뚜렷한 트렌드를 형성한다. 윤진섭은 이 흐름을 'DANSAEKHWA'라 명명한다.

단색화의 원조격은 1961년 미국에서 '청색 점화'를 그리기 시작한 김환기, 그리고 이우환의 정신적 사부랄 수 있는 달성군 출신 곽인식. 그는 1961년 'WORK61' 'FIELD FIVE' 등 빨강 노랑 단색화를 선도한다. 이후 이우환이 1968년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한국현대미술전'을 열었을 때 핑크, 빨강 계열 단색화 3점을 '풍경 1,2,3'으로 전시한다. 단색화를 먼저 주목한 건 우리가 아니라 일본이다. 도쿄화랑 야마모토 다카시 대표 등이 먼저 주목한다. 그 관심망에 들어 온 최초 5인은 '박서보, 서승원, 이동엽, 허화, 권영우'. 하지만 아직 세계 최고, 꿈의 갤러리로 불리는 구겐하임에 명실상부하게 론칭 될 수 있는 한국 화가는 박서보도 이우환도 아니고 오직 백남준뿐이다.

새로운 서광도 비치고 있다. 미국 LA카운티미술관의 마이클 고반 관장이 4년간 공을 들여 2019년 6월 '선을 넘어서-한국 글씨 아트전'을 오픈했다. 2022년, 2024년 20세기 한국미술전과 한국현대미술전까지 계획 중이다. 파급력이 상당할 것 같다. 아울러 경주엑스포대공원 솔거미술관은 내년부터 박대성을 중심으로 한국화의 브랜딩을 통한 3년간 일정의 세계 순회전에 착수할 모양이다. 호남은 서화 비엔날레, 영남은 한국화 브랜딩 순회전, 이게 합쳐지면 한국화의 판도를 바꿀 '빅매치'가 될 것 같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취재협조=현초 이호영, 일파 박영근, 청가 고홍선, 소헌미술관, 강암서예관, 청목미술관 박형식 대표.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영호남 상생 서화 연대기(3)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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