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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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27   |  발행일 2021-12-27 제27면   |  수정 2021-12-27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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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논설위원

최근 대구미술관에서 열렸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뒤늦게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산했던 미술관이 모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을 보면서 내심 흐뭇했다. 하지만 기대가 커서 그런지 전시 자체는 아쉬움을 줬다. 그 전시를 보면서 문득 10년 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보면서 느꼈던 실망감이 떠올랐다. 며칠을 돌아다녀도 다 못 본다는 박물관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힘겹게 찾은 모나리자 앞에서 약간 움찔했다. 사람이 많아서 길게 줄까지 서서 본 작품은 기대를 무너뜨렸다. 가로 53㎝, 세로 77㎝라 크기가 너무 작은 데다 안전 펜스 때문에 가까이 가서 볼 수 없었다. 이것 보겠다고 수많은 대형작품을 백안시했는데, 작품을 보자 먼저 크기에 실망했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서 느꼈던 감정도 비슷했다.

최근 한국 대표 미술관들을 연달아 둘러보는 호사를 누렸다. 서울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삼성 리움미술관을 관람한 뒤 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까지 봤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을 마음껏 봤다는 점에서 행복했지만 대구시립미술관의 한계를 다시 확인해 안타까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전은 대구미술관 전시와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질 않았다. 이건희컬렉션 중 기증작 21점을 토대로 꾸민 대구미술관 전시와 1천500점 가까이 기증받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어떻게 비교하겠는가. 작품 수, 크기 등에서 이래저래 아쉬웠다.

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전은 리움미술관 전시와 비교됐다. 세계 최고 미술재단인 매그재단과 협업한 이번 전시에서는 자코메티, 샤갈 작품 등 유럽 미술의 정수를 만날 수 있었다. 유료인데도 관람객 반응이 뜨거웠다. 전시에서 선보인 매그재단 작품을 시가로 따지면 9천700억원에 달한다니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자코메티의 조각을 보면서 그전에 봤던 리움미술관의 자코메티 작품이 오버랩됐다. 크기가 대구미술관 전시작의 2배 이상 됐다. 이 외에 미술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절로 '역시 리움' '그래서 서울'이란 탄성이 나왔다.

대구의 문화시설 인프라를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지역 문화 시설 인프라는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2년마다 나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구의 문화시설 인프라는 2018년 조사에 이어 지난해에도 최하위권이었다. 특히 미술관은 조사 대상 지자체 15곳 중 꼴찌였다. 그런데 눈여겨볼 사실이 있다. 대구의 미술관 한 개관 당 평균 연 관람 인원은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대구시민의 미술에 관한 관심은 높은데 미술관 수는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전시 관람에 대한 아쉬움을 그나마 대구미술관이 달래준다. 쿠사마 야요이 등 세계 유명작가 초대전, 간송특별전 등을 통해 세계 미술 걸작을 보여주고 한국미술의 우수성도 확인케 하는 기회를 줬다. 하지만 빠듯한 예산에 기획전, 소장품 매입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구미술관에 대한 대구시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공공미술관 인프라 구축도 절실하다. 대구미술협회 등이 중심이 돼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유치를 추진 중이다. 좋은 성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세금을 내고도 수도권보다 턱없이 적은 문화 혜택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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