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조조 래빗'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2019·미국)…희극과 비극의 공존, 나치를 풍자한 블랙코미디

  • 김은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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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07   |  발행일 2022-01-07 제39면   |  수정 2022-01-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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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뢰넨스의 '갇힌 하늘'(Caging Skies)을 원작으로 하는 '조조 래빗'은 소설과 결이 매우 다르다. 히틀러와 나치를 통렬하게 풍자한 블랙코미디로,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소년의 눈을 통해 밝고 유쾌하게 그렸다. 2차세계대전 말기의 독일, 나치를 동경하는 10세 소년 조조는 히틀러 청소년단에 입단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히틀러는 그의 상상 속 친구로 일상에서 항상 함께하는 존재다. 어느 날 벽 속에 숨은 유대인 소녀를 발견하고, 조조의 가치관에 균열이 생긴다.

아카데미 작품, 편집, 의상, 미술, 여우조연 후보에 올랐던 이 재기발랄한 영화는 각색상을 받으며 진가를 인정받았다. 각본, 감독, 제작, 주연을 겸했던 타이카 와이티티의 재능이 돋보이는데 뉴질랜드 출신인 감독은 어머니가 유대인, 아버지는 마오리족 혈통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밝힌 바 있는데 애니메이션 '모아나' 대본을 썼고 블록버스터 '토르:라그나로크' 감독으로 성공하기도 했다. 그의 다음 작품은 '스타워즈' 시리즈니, 뉴질랜드 출신의 코미디언이 할리우드 정상에 우뚝 선 셈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한데 조조 역의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와 엄마 역의 스칼렛 조한슨은 각각 골든글로브 주연, 아카데미 조연 후보에 올랐다. 히틀러 역으로 출연까지 한 감독은 영화를 독특한 블랙코미디로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전쟁과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발랄한 터치로 코믹하게 그려낸 타이카 와이티티의 재능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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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소설 '갇힌 하늘'에서 유대인 소녀 엘사는 "우리는 모두 각자의 프레임 안에 갇힌 하늘을 볼 뿐"이라고 했다. 지금의 우리도 내가 보는 것만이 전부이고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보는 풍경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조금은 더 폭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영화는 나치에 세뇌되어 히틀러를 영웅으로 여기는 소년의 변화를 통해 견고한 틀이 깨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게 한다. 히틀러와 나치를 매섭게 풍자하는 동시에 한 소년의 성장담이기도 한 이 영화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 전쟁이 끝나고 '전직 나치 소년' 조조와 유대인 소녀 엘사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배경음악은 데이빗 보위의 'Heroes'인데 마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온 그대들이 영웅입니다"라고 위로하는 것 같다. 이어서 영화는 릴케의 시 한 구절로 마무리된다. "아름다움도 두려움도 모두 경험하라. 오직 걸어가기만 하라…." 영화도 좋았지만 이 구절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 좋은 것만 경험하려 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안다. 릴케는 아름다움도 두려움도 모두 삶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고, 다만 인생길을 걸어가라고 말한다.

감독의 이름 '타이카'는 마오리 언어로 호랑이를 뜻한다고 한다. 영화 속 조조 엄마의 말대로 "호랑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두려움에도 당당히 걸어가는 한 해가 되기 바란다. "삶은 신의 선물이니 즐겨야지"라는 말 또한 마음에 새기고.
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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