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18] 두만강 투먼...강 건너 북한땅 민둥산엔 '속도전' 대형글씨 새겨져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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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07   |  발행일 2022-02-07 제21면   |  수정 2022-02-21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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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투먼에서 바라본 북한 산하와 투먼대교 풍경. 1998년 11월 모습인데 황량한 민둥산이 펼쳐져 있다.
'백두산 돌은 모두 칼을 갈아 없애고(白頭山石磨刀盡)/ 두만강 물은 모두 말에게 먹여 없애네(豆滿江水飮馬無)/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태평스럽게 못하면(男兒二十未平國)/ 후세에 어느 누가 대장부라고 말하리(後世誰稱大丈夫)'

학창 시절에 배워 각인된 조선시대 남이 장군의 시다. 사나이 대장부의 호기와 큰 포부가 잘 드러나 있어 이 한시를 외우며 감정이입이 되곤 하던 때가 생각난다.

17세 때 무과 장원급제 후 세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한 그는 27세 때는 변방의 여진족을 정벌하고 병조판서 자리까지 올랐다. 당시 여진족을 정벌한 뒤 백두산에 올라 이 시를 읊었으나, 얼마 후 권신들에 의해 역모로 몰려 28세에 생을 마감했다.

1998년 11월, 이 백두산과 두만강을 찾아 남이 장군의 기상을 느껴보겠다 싶었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백두산은 겨울이라 출입금지 조치로 포기하고, 두만강 인접의 중국 마을인 투먼(圖們)만 가볼 수 있었다.

썰렁하고 황량한 북중 국경마을서
새로운 다리 놓으며 경제적 번성
유엔제재·코로나로 관광객 제한도

겨울 나기 전 개구리 잡아서 만든
희귀한 탕요리 '하마' 기억에 남아


11월11일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에서 친구들과 조선족동포의 안내를 받아 백두산으로 향했으나, 도중에 백두산은 오를 수 없음을 알고 두만강과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투먼으로 갔다. 황량한 시골길을 승용차로 달려 투먼 두만강 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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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땅 투먼의 접경지역에 설치해놓은 무단월경 금지 안내판. 두만강 건너편에 북한 남양 마을이 보인다.
당시 투먼의 접경지역 분위기는 지금과는 크게 달랐다. 우리가 방문한 당시에는 관광객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국경 안내 표지판,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텅 빈 투먼대교, 강 건너 북한 산하 등이 눈에 들어왔다. 썰렁하고 황량한 초겨울 국경 분위기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갔던 남한 동포를 맞이했다. 강바닥에는 마른 초목들이 무성하고 강물도 별로 흐르지 않았다.

멀리 북한 땅에는 황량한 민둥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봉우리 위에는 흰 눈발이 흩뿌려져 있기도 했다. 산비탈에는 '속도전'이라는 대형 글씨가 간격을 두고 한 자씩 흰색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투먼대교 건너 다리가 끝나는 곳 주변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이 서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1942년에 개통된 투먼대교는 길이가 514m, 폭 6m의 시멘트 교량이다.

북한 산하를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투먼에 다시 가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을 통해 살펴보니 그 후 접경지역에 공원과 광장, 기념탑, 상가 등 많은 관광시설이 생겨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투먼대교 옆에는 북한과 중국이 함께 건설해 3년 전에 완공했다는 신 투먼대교가 놓여 있었다.

◆옌볜조선족자치주에 있는 투먼

두만강 하류에 있는 도시인 투먼은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南陽)과 마주하고 있다. 다리 가운데 국경선이 그어져 있다. 투먼의 동쪽에는 훈춘(琿春), 서쪽에는 옌지가 있다.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 속하는 투먼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조선족동포다. 북한과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지역이고, 거리 간판도 한글과 한자가 병기돼 있다. 옌볜에는 '산마다 진달래, 골마다 혁명열사비'란 말이 있다. 1919년 봉오동·청산리전투를 비롯해 광복이 될 때까지 항일독립운동 유적 등이 곳곳에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까지는 투먼대교 관광이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개방됐으나, 지금은 외국인 관광이 제한되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은 투먼대교 중간 국경선까지 드나들 수 있다.

투먼대교가 끝나는 북한 지역에는 기차역 남양역이 있어 투먼과 남양은 북·중간 교역이 비교적 활기를 띠던 곳이었다. 그래서 북한과 중국은 기존 투먼대교 옆에 새로운 대교를 건설했으나 유엔제재와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로 개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모양이다.

두만강(豆滿江)은 백두산(2천744m)의 동남쪽 대연지봉(2천360m)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석을수(石乙水)를 원류로 하여 마천령산맥과 함경산맥에서 발원하는 지류들과 합류해 동해로 흘러든다. 북한과 중국·러시아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두만강의 길이는 521㎞. 고려강(高麗江)·도문강(圖們江)·토문강(土們江)·통문강(統們江) 등으로도 표기되었다.

두만강은 북·중 국경을 이루고 있기에 역사상 매우 중요한 강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함경도 지역에 기근이 들 때마다 우리 선조들이 강을 넘어 간도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이들로 인해 청나라와 국경 문제가 야기되기도 하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일제의 학정을 피해 수많은 우리 민족들이 이 강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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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개구리 이야기

투먼 가는 길에 처음 먹어보는 요리를 맛본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희귀한 개구리 요리였다.

경북 지역 산골과 같은 길을 가다가 길옆 촌가에 들어가니, 미리 주문해둔 음식이 곧바로 나왔다. 하마 요리라 했다. 조선족들이 '하마'라고 부르는 개구리탕이었다. 크게 맛있었다는 기억은 없지만, 일행을 안내한 조선족 검사가 우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귀한 음식이었다.

하마는 봄에 산으로 들어가 살다가 9~10월이 되면 겨울을 나기 위해 계곡에 내려오는데, 이때 틀을 놓아 개구리를 잡는다고 한다. 귀하고 비싼, 정력에 좋은 몸보신 음식으로 알려져 중국인들이 선호한다고 했다.

하마는 중국 지린성, 랴오닝(遼寧)성, 헤이룽장(黑龍江)성 지역에 사는데, 9~10월이 되면 이 개구리잡이에 나선다고 한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산에서 물가로 내려오는 습성을 이용해 비닐 막 등을 설치해 잡는다. 잡은 개구리 중 수컷은 그대로 팔고, 암컷은 기름(수란관)을 떼어내 따로 판다. 암컷의 수란관(알을 둘러싸고 있는 액체막)을 말린 것인 '개구리 기름'은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하마를 '기름개구리'라 부르는데, 북한 주민들은 1990년대 중반 중국인들이 '기름개구리'의 기름을 찾는다는 소문이 나자 자강도와 양강도 등 산골에 하마를 잡으러 많은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상하이와 베이징을 거쳐 투먼까지 가본 여정이었는데, 마지막 투먼 접경지역 여정에서는 어린 시절(1960년대 후반) 고향 시골 생활이 떠오르기도 했다.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구워 먹고 산에 올라 땔감을 장만하던 시절이었다. 북한도 빨리 발전하고 변화해서 유럽 국가들의 국경을 넘나들듯이 쉽게 북한 땅도 드나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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