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행복콘서트] 게딱지 집…"게딱지만한 집에 살아도 안빈낙도 즐길 수 있으면 누구보다 행복한 삶 누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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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08   |  발행일 2022-04-08 제34면   |  수정 2022-04-08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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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이미지 뱅크〉

게의 등딱지인 게딱지는 집이 작고 허술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이 크고 화려한 고대광실에 살면 더 행복할까. 게딱지만 한 집에 살면 불행할까. 소암(疎庵) 임숙영(1576~1623)의 '게딱지집 기문(蟹甲窩記)'을 소개한다.

'집 가운데 게딱지집보다 더 큰 곳이 없고, 구름 위로 솟은 고대광실이 오히려 작은 법이다. 이른바 구름 위로 솟은 집이라 한 것은 부귀한 사람의 집이 아니겠는가. 높은 곳은 다락이라 하고, 밝은 곳은 거실이라 하며, 평평한 곳은 뜰이라 하고, 트인 곳은 정원이라 한다네. 그 안을 구획하여 첩을 숨겨두고, 그 한 귀퉁이를 따로 두어 빈객을 머물게 하며, 그 바깥을 덜어내어 하인들을 거처하게 하지. 이러한 곳은 깊숙한 대저택이라 하지. 이곳에는 수만명을 들일 수 있을 뿐이 아니라네.

구름 위로 솟은 집이라도 만족스럽지 못하면
천 칸·만 칸을 차지하더라도 작은 것에 불과
즐길 바는 작지 않으니 무엇을 한탄하겠는가

그런데도 거주하는 사람들은 조바심을 내고 스스로 불만스러워하면서 더욱 집을 넓혀서 크게 하고자 하지. 그렇다면 비록 서울의 땅을 다 차지하여 집터로 삼고, 농촉의 산을 다 차지해 재목을 댄다 하더라도 아마 스스로 불만스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할 것일세. 그러므로 천 칸·만 칸의 큰 집이라 하더라도 이미 스스로 불만스러워한다면 큰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큰 집을 두고도 스스로 불만스러워한다면 큰 것이 아닌 법이라네. 천 칸·만 칸의 집에 스스로 불만스러워하는 경우를 보면 부귀를 차지한 자들이 거의 다 그러하다네. 이 때문에 구름 위로 솟은 집은 높다랗게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불만스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내가 크다고 하지 않고 작다고 한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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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딱지만 한 집에 살아도 어떤 크고 화화로운 집에 사는 이보다 행복할 수 있다.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하다 본 주유소 천장에 지은 제비집이다.


임숙영은 이어 게딱지만 한 집은 매우 작지만, 스스로 만족하고 살면 작지 않고 오히려 큰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대개 천하의 사물이 크거나 작거나 관계없이 사람이 만족스러워하면 비록 작더라도 또한 크게 느껴지고, 사람이 만족스럽지 못하게 생각하면 비록 크더라도 또한 작게 여겨지는 법이라네. 저 게딱지집은 집 가운데 지극히 조그마한 것이요, 구름 위로 솟은 집은 집 가운데 지극히 큰 것이지. 그러나 게딱지집이 사람에게 만족스럽고 구름 위로 솟은 집이 사람에게 만족스럽지 못하므로, 내가 집 가운데 게딱지집보다 더 큰 곳이 없고, 구름 위로 솟은 고대광실이 오히려 작은 법이라고 말한 것일세.

또 자네는 달팽이 촉각 위 왼쪽과 오른쪽에 만국(蠻國)과 촉국(觸國)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는가. ('장자'에 달팽이 두 촉각에 만국과 촉국이 있어 두 나라가 전쟁을 하여 시신이 백만을 헤아렸다는 고사가 있다) 사물 중에 이보다 더 작은 것은 없지만, 그런데도 여기에 나라를 둘이나 들일 수 있었다지. 조그마한 게딱지가 달팽이 촉각 정도는 아니요, 큰 집 하나의 크기가 두 나라에 비할 바가 아니라네. 달팽이 촉각 위에 두 나라를 들일 수 있다면 유독 게딱지 안에만 집 하나를 들일 수 없겠는가. 게딱지는 달팽이 촉각에 비한다면 그래도 큰 편이지 않은가.

또 비록 게딱지집에 사는 것이 괴롭다 하더라도 물고기 뱃속에 장사를 치르는 것보다야 그래도 낫지 않겠는가. 예전에 굴원(屈原)이 강가로 쫓겨나서 집을 구하려 하였지만 결정을 할 수 없어서 최후에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었고, 그 뼈를 물고기 뱃속에다 장사를 치르게 되었다네. 이제 자네도 또한 쫓겨난 신하가 아닌가. 게딱지도 또한 물고기 뱃속과 같은 종류라네. 그런데 굴원은 목숨을 잃고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치렀고, 자네는 게딱지집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데 자네가 바라는 것이 너무 많지 않은가. 어찌 게딱지집이 작다고 말할 겨를이 있는가. 자네는 이곳에서 눕고, 이곳에서 기거하고, 이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지. 들어가서 마음대로 못할 것이 없으니 그만하면 좋은 것이라네. 자네가 머물고 있는 집이 비록 작기는 하지만 즐길 바는 작지 않으니 다시 무엇을 한탄하겠는가.

사물은 큰 것으로 작은 것을 알 수 있고,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알 수 있는 법이라네. 조그마한 게딱지집 역시 크게 여길 때가 있다네. 자네는 어찌 예전 살던 집처럼 여기지 않는가. 예전 자네가 살던 집 또한 좁았겠지만 그래도 게딱지집에 비한다면 클 것일세. 이를 가지고 본다면 자네가 예전 살던 집처럼 여기게 될 날도 그리 머지 않을 것일세.'

위 글에서 '농촉'은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사람이 만족을 모르면 농나라 땅을 평정하고 나서도 다시 촉나라 땅을 바라본다'라는 글귀에서 유래한 것으로, 만족을 모른다는 비유로 쓰이는 말이다.

이 '해갑와기(蟹甲窩記)'는 임숙영이 1621년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을 당하여 경기도 광주의 용진(龍津)에 물러나 살고 있을 때 지은 글이다. 당시 그의 벗 이명준(李命俊) 역시 벼슬에서 쫓겨나 경상도 영해 땅에 유배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살다가 유배객이 되어 게딱지만 한 좁은 집에 살게 된 이명준을 위로하며 지은 것이다.

아무리 큰집이라도 만족 모르면 부족할 것이고
초가삼간이라도 욕심이 없으면 대궐보다 넉넉
소암 임숙영이 좁은집서 유배생활하는 벗 위로

이명준이 영해 바닷가로 유배를 온 후 머물 집도 없는데다 풍토와 기후가 맞지 않아 오래 고생한 다음에야 거처 하나를 겨우 마련하게 되었다. 그 집이 조그마하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해갑와(蟹甲窩)'라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해 그 기문을 지은 것이다.

임숙영은 1611년 별시문과 시험장에서 주어진 이외의 제목으로, 척족의 횡포와 이이첨이 왕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존호를 올리려는 것을 심하게 비난했다. 이를 시관 심희수가 좋게 보아 급제시켰는데, 광해군이 임숙영의 글을 보고 크게 노하며 이름을 삭제하도록 했다. 그러나 몇 달간의 삼사(三司) 간쟁과 이항복 등의 주장으로 무마, 다시 급제되었다. 그 후 한동안 벼슬생활을 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한다. 아무리 큰 집이라도 만족을 모르면 부족하다 할 것이고, 초가삼간이라도 욕심이 없으면 고대광실보다 더 넉넉할 수 있는 것이다. 유배지의 게딱지만 한 거처에 살면서도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즐길 수 있었다면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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