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김기택 '꼽추'

  •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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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0  |  수정 2023-07-10 07:05  |  발행일 2023-07-10 제25면

지하도 그 낮게 구부러진 어둠에 눌려 그 노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매일 그 자리 그 사람이지만 만나는 건 늘 빈 손바닥 하나, 동전 몇 개뿐이었다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정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는 어둠 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김기택 '꼽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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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시인)

모든 사물은 안과 밖이 다르지만, 이상하게 서로 다르면서도 안팎은 잘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슬픔은 기쁨의 내부이거나 느림은 빠름을 거치기도 한다. 김기택의 시 '꼽추'가 그러하다. 지하도에서 구걸하는 노인의 등에서 슬프게 솟아났기에 불편과 누추함의 상징이지만, 혹을 알로 변신시킨 뒤 신성과 시원을 부여한 시인의 솜씨는 이후 그가 오랫동안 진정성의 시인으로 거듭나게 된 동력원으로 작동한다. 꼽추·장애가 원시의 순수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생명의 외경에 바치는 최고의 헌정이다. 사람에 대한 섬김은 언제나 문학의 숭고한 배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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