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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수확한 감자. 감자는 만능 식재료다. 〈필자 제공〉 |
하지가 지나더니 장마가 시작되었다. 텃밭 작물에 가장 가혹한 계절은 겨울이겠지만 여름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잦은 비로 날씨가 고온다습해지면 병해충이 많아져 작물은 여러 질병에 걸리기 쉽다. 강한 햇빛도 과수와 채소에 치명적이다. 잎이 타들어 가거나 노랗게 변색되고, 열 스트레스로 인해 성장이 지연되거나 열매가 덜 익을 수도 있다. 수분 증발이 많아져 탈수현상이 일어나고, 수확량이 감소하기도 한다. 덩달아 병충해에 취약해지니 살충제를 살포하곤 한다. 소비자들이 시장과 마트, 택배로 손쉽게 구입하여 먹는 작물은 농부들이 흘린 땀과 자연이 협업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지는 봄농사를 정리해야 하는 시기다. 여름장마가 오기 전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갈무리하지 않으면 애써 키운 작물을 거두지 못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대로 버려야 한다.
가장 먼저 거둬야 하는 것이 감자다. 이맘때 캐지 않고 장맛비를 맞으면 감자가 썩거나 싹이 날 우려가 있다. 뿌리가 땅속 깊이 박히는 고구마와 달리 감자는 이랑 윗부분에 달리므로 캐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다. 줄기를 잡고 호미나 손으로 흙을 살살 긁어내면 감자가 줄줄이 달려 나온다. 올해는 수미감자 4㎏을 심었는데 그보다 몇 배를 더 수확했으니 결과가 나쁘지 않다. 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나누어 상자에 담아 창고에 쟁여두었다.
절기 중 하지는 봄농사 정리하는 시기
장맛비 맞기 전에 감자부터 먼저 거둬
당근·상추도 성장상태 따라 적기 수확
토마토는 수시로 곁가지 따고 솎아내
땅심 길러 가을농사 지을 준비도 해야
감자는 다양한 음식에 활용할 수 있는 만능 식재료다. 삶아서 아침, 저녁 식사로 먹기도 하고, 샐러드나 국수에 감자를 곁들여 먹으면 공복감을 해소할 수 있다. 실제 영양 측면에서도 감자는 비타민 C, 비타민 B6, 칼륨 등이 풍부할 뿐 아니라 칼로리가 낮고 섬유질이 풍부하여 건강에도 좋은 식품이다.
감자 다음으로 좋아하는 채소가 당근이다. 당근은 비타민 A, 베타카로틴, 칼륨, 섬유질 등이 풍부하다. 비타민 A는 눈 건강에 좋고, 베타카로틴은 항산화 작용을 하여 노화를 예방하며, 칼륨은 혈압을 낮추고, 섬유질은 변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당근은 샐러드, 생채, 주스, 볶음, 조림, 튀김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당근은 파종 후 70~80일 정도가 지나면 수확할 수 있다. 당근 뿌리를 손으로 만져보면 굵고 단단해지고 잎이 누렇게 변하면서 밑으로 처지면 수확할 때다. 당근을 너무 늦게 거두면 뿌리가 딱딱해지고 맛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성장상태를 보고 적기를 판단해야 한다. 크기별로 나누어 지퍼백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하면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다.
당근을 심는 방법에는 줄뿌리기와 흩뿌리기가 있다. 나는 후자의 방법으로 당근 씨를 뿌린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싹이 트고 나서 성장 상태에 따라 수시로 솎아주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굳이 이 방법으로 당근농사를 짓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시로 솎아낸 당근을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당근을 물에 깨끗이 씻어 그대로 먹으면 산삼보약이 필요 없다. 또한 고기와 당근을 함께 구우면 주황색이 더욱 선명해져 보기에도 좋고, 당근의 달콤한 맛이 고기와 어울려 서로 궁합이 잘 맞다.
하지를 전후하여 봄상추도 거둬야 한다. 한국인의 밥상에 빠질 수 없는 채소 중의 하나가 상추다. 여름상추와 가을상추도 있지만 봄상추의 식감을 따를 수 없다. 봄상추는 잎이 연하고 부드럽고 아삭아삭하여 샐러드나 쌈으로 많이 사용된다. 락투세린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상추는 진정 작용이 있어 수면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상추에는 칼륨이 풍부하여 신경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수면의 질을 개선하고 불면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하지가 다가오면 꽃대가 올라오고 잎이 거칠어진다. 씨 받을 상추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거두어야 한다.
봄 채소를 거두고 나면 본격적으로 여름농사를 준비해야 한다. 봄에는 때 맞춰 비가 내리고 날씨도 따뜻하여 작물이 싹 트고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하지만 하지를 지나 장마가 시작되는 6월 말부터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올라간다. 고온과 함께 여름 한낮의 강렬한 햇빛도 텃밭 채소들에 '광포한 독재자'와 같은 무서운 존재다.
'8월 염천의 한낮, 태양은 광포한 독재자 텃밭에는 목마른 작물들이 뱉어내는 숨 밭은 앓는 소리만 가득하다 두 눈 부릅뜬 태양은 매섭게 햇빛을 쏘아대며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태워버릴 듯 호기를 부린다'(졸시, 「옥수수·2」 부분)
6월 말쯤이면 옥수수는 뿌리를 땅속 깊이 박고 있어 웬만해서는 장마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심어도 모든 옥수수가 튼실할 수는 없다. 간혹 뿌리를 굳건히 내리지 못하고 장마로 무른 땅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옥수수가 있다. 땅 위에 누워있는 옥수수는 세우고 흙을 북돋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여름이 오면, 토마토의 성장세도 눈부시다. 수시로 확인하여 곁가지를 따주고 익은 토마토는 솎아주어야 한다. 텃밭농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어느 것이 토마토의 본가지고 곁가지인지 알지 못했다. 이웃 할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순지르기하는 방법을 체득했다. 방심하면 곁가지가 본가지보다 더 굵고 많이 자라기도 한다. 아깝다고 제때 가지를 정리하지 않으면 굵고 탐스러운 토마토를 얻을 수 없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작물을 가꿀 때도 취사선택을 해야 한다. 무엇을 남기고 버릴 것인가. 버리지 못하고 남기고 취할 것에만 집착하면 결국 모두 잃고 만다.
이 밖에도 고추와 고구마 등 가을에 수확하는 작물을 관리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 장마기를 보내면서 고추는 탄저병을 비롯해 질병에 쉽게 감염된다. 농약을 치지 않고 자연농법으로 텃밭을 가꾸다 보니 고추농사 짓기가 쉽지 않다. 올해는 집에서 먹을 고추 중심으로 소량 재배하는 쪽으로 대폭 줄였다. 가꾸기에 까다로운 고추와는 달리 고구마는 기세등등하게 줄기를 뻗어 나간다. 다른 작물을 덮거나 너무 뻗어 나가면 한 번씩 줄기를 잘라준다. 고구마줄기는 섬유질이 풍부하고, 비타민, 엽산, 철분 등이 풍부한 식재료라 무침이나 볶음으로 먹어도 좋고,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에 넣어 먹어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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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
그리고 봄 채소를 거둔 땅은 여름 동안 가을농사를 지을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정원 잔디를 깎은 부산물을 덮어 잡풀이 나는 것을 막고, 썩으면 거름으로 활용한다. 음식물찌꺼기와 톱밥으로 만든 퇴비를 뿌려 미리 땅심을 길러두어야 한다. 텃밭 여기저기 나있는 잡풀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그대로 놔두어도 좋다. 잡풀 뿌리는 흙 속의 미생물을 촉진하고 수분을 적당히 유지하는 등 제대로 활용하면 질 좋은 토양을 만드는 데 아주 유용하기 때문이다. 만일 잡풀이 웃자라 다른 작물의 생육에 지장을 준다고 판단되면 뽑아서 멀칭재료로 쓰면 된다. 텃밭에서 거둔 작물은 따로 버릴 것이 없다. 거둔 모든 작물은 그가 태어난 고향인 땅으로 되돌려 주는 것, 자연농법의 시작이자 끝이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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