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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무 〈대구 화동초등 교사〉 |
날마다 출근하면 학교 텃밭을 둘러본다. 아이들이 텃밭을 만들고, 흙을 채우고 씨뿌리고 심고 가꾸고 있다. 곡식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텃밭을 가꾸는 원칙으로 알고 실천한다. 밤새 잘들 있었는지 둘러보고 오면 아이들이 등교한다. 다시 아이들과 텃밭에 새로 핀 꽃을 따라 산책한다.
밤새 장맛비가 쏟아진 둘째 날 아침,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온다. 아이들과 우산을 쓰고 산책한다. 며칠 동안 준비하며 자라던 해바라기가 장맛비에 활짝 노란 꽃잎을 열어젖히고 피었다. 오늘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부레옥잠은 점점 포기가 늘어나고, 함지박 논 작은 개구리밥은 넘쳐 바닥에 흩어졌다. 부처꽃도 연분홍 작은 꽃으로 가득 피었다. 딱 하루만 피는 여리디여리고 작고 흰 어리연은 꽃봉오리가 동그랗게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노란 수련 두 송이가 피려고 한다. 사흘 전 핀 홍련은 질 때가 되어 꽃잎이 흐트러졌다. 보라색 도라지꽃이 가득 피었다. 그 아래 토란에 떨어져 통통 튀는 물방울이 재미있다. 학교 곳곳에 흩어진 자라던 싹을 모아 둔 채송화도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비숍 달리아는 백조의 호수 주인공이 튀튀 치마를 입고 빙글 돌다 막 뛰어오르려는 자세이다. 방울토마토는 익으면 누군가 따 먹고, 블루베리는 이제 아이들 아침 간식으로 인기가 없다. 아로니아는 아이들 입맛에 맞지 않아 익은 채 떨어진다. 아무래도 내 몫이다.
오이는 충분히 자라면 잘라서 간식으로 나누어 먹는다. 고추, 가지는 굵어졌나 싶어서 보면 없다. 누군가 맛나게 먹었을 것이다. 부추와 파도 잘 자라고, 원추리도 피었다. 벽화마을 할머니에게 얻어 와서 땅이 없어 몇 번 옮겨심은 분꽃도 이제 꽃이 피고. 지리산 어느 식당에서 얻어 온 맨드라미도 뿌리를 잘 내렸다. 호박은 크고 누렇게 익고, 커다란 잎 속에 숨은 박은 주먹만 해지고, 복수박도 여러 개 커지고 있다. 초록 커튼을 만들려고 심은 수세미, 작두콩, 여주, 하늘마는 줄을 타고 2층까지 올라갔다. 올라가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아침마다 딸기를 살펴보고 교실로 가는 6학년 여학생에게 화분을 크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4학년 식물의 한살이를 공부하면서 심은 옥수수는 세 자루가 차례로 익어가고 있다. 수염 하나마다 옥수수 알이 달린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 아직 여물지 않은 옥수수 한 자루를 꺾어갔다. 옥수수 아래 강낭콩 꼬투리도 여물어 가고 있다. 여름 방학 전에 4학년들은 옥수수와 강낭콩을 삶아 먹을 것이다.
유치원 주사님은 국화재배 전문가이시다. 잎꽂이로 뿌리를 내어 나누어 준 국화는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가을엔 국화로 아름다울 학교를 생각해 본다. 햇빛이 부족한 텃밭에 고구마들은 6학년들의 정성으로 잎이 무성해지고 있다. 꼭 많이 달려야 할 텐데 땅이 좋지 않아 미안하다. 닭의장풀도 한 송이 피어났다. 감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이제 교문까지 왔다. 지난주 달성농업기술센터에서 분양받아 아이들이 무더위에 심은 베고니아, 안젤로니아, 라벤더. 멜란포디움도 잘 자라고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이 교실에서 씨를 뿌리고 가꾸고 옮겨 심어 둔 봉숭아가 빨강 분홍색 꽃을 피우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맞는다. 봉숭아는 아이들이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주말에는 가을 꽃밭을 꾸밀 백일홍을 가꾸어야 하는데 계속 미루고 있다.
아이들과 이렇게 한 바퀴 아침 산책을 마치고 교실로 올라가 시를 쓰고 일기를 쓴다. 1학기 내내 아침마다 하는 활동이어서 이제 제법 습관이 되고 있다. 과학은 변화를 관찰하는 공부이다. 아이들은 날마다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배운다. 이렇게 아이들은 식물들의 한살이를 배우고, 식물 사이엔 살아가는 동물의 한살이를 배운다. 아니 생명의 신비를 배우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산책의 맛을 배운다.
교장 연수를 마치고 온 교감과 생태적 감수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오니 학교 텃밭과 숲을 산책하면 좋겠다는 권고 쪽지를 보냈다. 많은 교사는 가르칠 내용이 너무 많고, 업무가 너무 많아서 교실 밖의 엄청난 수업자료를 내버려 두고 있다. 나는 과학에서 기초과학이 중요하듯이, 학교 교육에서도 자연을 탐구하면서 국어 수학 영어 기초학습만큼 더 기초 기본이 되는 공부가 생태적 감수성을 길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사들부터 그렇게 양성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교사는 학교 밖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숲을 가꾸고 텃밭을 만들고, 놀이터를 만들어 두어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웃 유치원 아이들도 온종일 교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중요하게 가르쳐왔고, 가르치고 있는가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38년 교사를 하면서 생태적 감수성이 가장 중요한 공부라는 생각과 경험을 널리 전하는 일을 교직의 마무리 소명으로 정하고 살고 있다.
임성무 〈대구 화동초등 교사〉

임성무 대구 화동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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