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북 포항 기계면 봉계리 봉강재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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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07  |  수정 2023-07-07 08:58  |  발행일 2023-07-07 제12면
죽어서도 고향 못간

왕건의 충신 윤신달

善政의 땅에 잠들다

[주말&여행] 경북 포항 기계면 봉계리 봉강재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의 묘에서 본 봉강재. 이곳은 풍수학자들이 최고 명당으로 꼽는 묫자리로 당시 신라유민들이 그를 흠모해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들을 지나면 금세 산이다. 마을 안길을 따라 늘어선 몇 채의 집을 스치자 아주 먼 길을 온 양 숲으로 둘러싸인다. '충효관' 현판이 걸린 큼지막한 건물과 넉넉한 주차장을 지나 슬쩍 굽이진 길에 들자 반듯한 석축과 흙돌담이 곧게 뻗어 나간다. 담 위로 드러나 보이는 반드르르한 기와지붕들과 저 멀리 점으로 끝나는 담장의 소실점만 보아도 대단한 규모임을 짐작하겠다. 솟을대문 앞에 내리자 맞은편 평지의 가장자리에 제각각의 집을 가진 강아지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늠름하게 버티고 서서 쳐다본다. 세심한 경계의 몸짓이다. 경험에 의하면, 들고나는 이 많은 집의 강아지들은 짖는 법이 드물다.

봉강재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 모신 재실 … 윤관이 5세손
경주대도독으로 부임 30년 선정…개경의 아들 끝내 못봐
1737년 후손들이 훼손된 묘 복원 후 봉강재 세우고 편액
태사공 위패 모신 봉강묘 가는 길 옆 비석 빼곡히 늘어서


◆봉강재

솟을대문에 숭앙문 현판이 걸려 있다. 생각보다 아담한 대문 안으로 봉서암(鳳棲菴) 편액이 보인다. 깨끗한 마당에 들어서자 정면 6칸에 누마루를 갖춘 'ㄱ'자형 평면의 당당한 건물과 마주한다. 누마루에는 봉강재(鳳岡齋)와 태사공분암(太師公墳菴)이라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있다. 태사는 고려시대 정1품 벼슬이고 태사공은 파평윤씨 시조인 윤신달(尹莘達)을 칭하며 분암은 묘소 곁에 있는 재실을 말한다. 이곳은 윤신달의 재실인 봉강재다.

파평윤씨 문중의 문헌에 윤신달의 탄생 설화가 전해온다. 893년 음력 8월15일, 현재의 경기도 파주 파평산 서쪽 기슭에 용연이라는 연못에 옥함(玉函) 하나가 떠 있는 것을 보고 근처에 살던 노파가 건져내 열어 보니 옥동자가 있었다고 한다. 아기의 두 어깨에는 일월(日月) 모양의 붉은 사마귀가 나 있고 좌우 겨드랑이에는 여든 한 개의 비늘이 돋아 있었으며 발바닥에는 북두칠성 형상을 한 일곱 개의 점이 있었는데, 손금의 형상이 윤(尹)자와 같아 성을 윤씨로 정했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학문과 무예가 뛰어났으며 장성한 후에는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기여했으니 그가 바로 파평윤씨 시조인 윤신달이다.

고려 건국과 국가기반을 다지는 일에 많은 공을 세우고 태자를 교육시키는 삼중대광태사(三中大匡太師)를 지낸 그는 태조 승하 후 혜종이 왕위에 오르자 944년 신라 유민을 다스리는 경주대도독(慶州大都督)으로 보내졌다. 그는 경주에서 30년간 선정을 베풀다가 973년 81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그의 재임 기간 중 단 한 번의 반란도 없었다고 전한다.

윤신달은 고향이 아닌 이곳에 묻혔다. 멀리 있는 후손들이 돌보지 못하는 사이 묘소는 사라졌고 그예 지방의 토호가 전래하던 묘비를 동강 내어 땅속에 묻고는 집안의 묘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700여 년이 지나 조선 영조 13년인 1737년, 후손이 전 묘역을 파헤쳐 동강 난 묘비를 찾아냈고 봉분을 쌓아 묘역을 조성했다. 그 이후 세운 것이 봉강재다. 처음에는 봉서암이라 편액하고 승려를 상주시켜 묘역을 지키게 했다. 이것이 봉강재에 봉서암 편액이 걸린 연유다.

봉강재를 중심으로 동편에는 초가지붕의 마구간과 '강학당' '화수정' 등이 자리하고 그 옆으로 봉강서원이 일단의 경역을 이루고 있다. 서편에는 '추모헌' 편액이 걸린 재실과 회의실이라는 작은 안내가 붙은 4칸 건물이 있다. 회의실의 1칸은 문이다. 추모헌과 회의실에 둘러싸인 정갈한 정원과 문 속으로 사라져가는 오르막길이 곱다.

[주말&여행] 경북 포항 기계면 봉계리 봉강재
봉강묘 가는 길이다. 작은 판석이 촘촘하게 깔린 오르막 곁으로 전국각지의 종친들이 참배를 했다는 기념 표석이 즐비하다.
[주말&여행] 경북 포항 기계면 봉계리 봉강재
봉강묘 아래로 봉강재의 까만 지붕이 단정한 열을 이루고 멀리 산언덕에는 잔디밭을 넓게 펼쳐놓은 묘소가 흐뭇한 표정을 짓는 듯하다.

◆봉강묘 가는 길

문 앞에 두 갈래 길이 있다. 정면 오르막은 '산소 가는 길', 오른쪽은 '봉강묘(鳳岡廟) 가는 길'이다. 작은 판석이 촘촘하게 깔린 오르막 곁으로 수많은 비석들이 서 있다. 비석들을 읽으며 봉강묘로 간다. 포항시종친회, 함양군화수회, 공주시종친회, 대구달성가현문중, 울진군종친회, 칠곡다부진사공파, 파주화수회, 안동종친회 등등 전국의 모든 지명을 본 것 같다. 비석들은 봉강묘 직전까지 빼곡하다. 봉강묘는 윤신달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삼문과 돌담이 높아 내부는 보이지 않는다. 눈 아래로 봉강재의 까만 지붕이 단정한 열을 이루고 멀리 산언덕에 잔디밭을 넓게 펼쳐놓은 묘소가 흐뭇한 표정을 짓는 듯하다.

봉강재, 봉강묘, 산소. 이 전체를 불그스름한 줄기의 소나무들이 커다랗고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다. 봉강재 규약에 이런 내용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는 봉분을 쌓고 나무 심는 일을 늘려가서 훗날까지 이어가게 한다.' 짙은 숲으로 인해 묘역은 한없이 넓어 보인다. 가만 생각해 본다. 봉강재는 포항 기계면 봉계리, 그중에서도 봉계2리 관평 부락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봉계리는 봉좌산 아래 계곡을 따라 생겨난 마을이고, 계곡의 서쪽에 위치하니 봉서, 봉좌산 자락 언덕에 자리하니 봉강이라 한 게 아닐까. 제멋대로지만 그럴듯하다. 관평은 윤신달의 후손이 조상의 묘를 찾기 위해 관청을 두었던 곳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주말&여행] 경북 포항 기계면 봉계리 봉강재
봉강재와 앞마당. 누마루에 봉강재와 태사공분암이라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봉강재는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201호로 지정되어 있다.
[주말&여행] 경북 포항 기계면 봉계리 봉강재
오른쪽은 재실인 추모헌, 정면은 회의실 건물이다. 정원을 지나 문 속으로 산소 가는 길이 보인다.

◆산소 가는 길

묘소로 간다. 아주 평온한 자리다. 봉강재는 불쑥 가깝기도 하고 훌쩍 멀게도 느껴진다. 이곳은 풍수학자들이 최고 명당으로 꼽는 묫자리라는데 당시 신라유민들이 그를 흠모해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풍수를 몰라도 좋은 자리라는 것은 알겠다. 봉분은 부드럽게 나지막하다. 앞에는 혼유석과 장명등이 있고 비석과 망주석, 문인으로 보이는 석인이 서 있다. 그리고 흔히 볼 수 없는 양 모양 석조물이 있다. 이는 주로 왕릉을 지키는 석물인데 다른 것들에 비해 뽀얀 것이 근래에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묘에서부터 저 아래 봉강재 즈음까지 내리막으로 펼쳐져 있는 잔디밭은 삼천 명의 자손들이 모여서 배례를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매년 가을 제를 올릴 때면 수백 명이 이곳에 운집한다. 혜종은 윤신달을 경주로 보낼 때 그의 아들을 개경에 붙잡아 놓았다. 먼 지방에서 그의 힘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윤신달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면면이 이어졌다. 시조 윤신달부터 5세손 윤관까지는 단일계통이다. 여진 정벌의 바로 그 윤관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고 다시 아랫대로 내려가면서 수십으로 분파되었다. 2000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파평윤씨는 70만 명이 넘는다.

묘소를 지나 오르막의 반대편으로 내려간다. 단순하면서도 질서 있는 동선이다. 아래로 내려오면 풀숲에 숨겨진 듯 자리한 연못이 보인다. 임수(臨水)인가? 연못은 그저 말갛게 하늘을 비출 뿐, 물고기는 보이지 않는다. 파평윤씨 사람들은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옥함의 옥동자가 비늘을 달고 있었으니 잉어의 후손이라 여기고, 윤관이 여진과 싸울 때 잉어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니 그 은혜를 잊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연못에 물고기가 없는 것도 그와 관계가 있을까. 연못을 지나면 다시 솟을대문이다. 모든 길과 모든 공간이 정연하고 단정하며 고즈넉하다. 시조에 대한 후손들의 존경과 예를 강하게 느끼면서도 위축됨 없이 누릴 수 있다. 강아지는 한 번도 짖지 않았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대구포항고속도로 서포항IC로 나간다. 포항, 기계방향으로 우회전해 직진하다 고지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기계천 건너 기남길 따라 직진한다. 농협 공장 지나 조금 더 가면 왼쪽에 '파평윤씨 시조묘 진입로' 표지석과 '봉강재 700m' 이정표가 있다. 정면으로 농경철기문화 테마공원 입구가 나오면 우회전, 50m 정도 거리의 첫 번째 갈림길에서 좌회전해 마을 안쪽 끝까지 들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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