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말로써 말 많은 세태 유감

  • 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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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0  |  수정 2023-07-10 07:08  |  발행일 2023-07-10 제26면
말은 불통아닌 소통수단

서로 존중하는 상호작용

목소리 크다고 주목안받아

위세 과시하려는 것이지만

존재감까지 커지진 않아

[아침을 열며] 말로써 말 많은 세태 유감
박순진 (대구대 총장)

뉴스를 보다가 문득 옛날 시조 한 편이 떠올랐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하는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조선 영조시대 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에 실린 작자 미상의 시조이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사람들 사이에 오해를 낳고 불필요한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이를 삼가는 자세를 강조한 옛사람의 지혜가 돋보인다. 젊은 시절 익힌 글이 꽤 긴 시간이 지나 새삼 떠오른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과 공직자의 여러 언사가 국가적 논란을 거듭하는 상황을 보면서 무척 답답하던 터였다. 지금처럼 번잡한 세상에서 거듭 되새겨볼 만한 가치 있는 말이다.

며칠 사이 유력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의 말이 연일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사가 수위 높은 표현을 거침없이 내뱉으니 여간해서 논란이 잦아들지 않는다. 논란이 확산하면서 더 자극적이고 거친 표현이 연이어 등장한다. 너나없이 이판사판이다. 이쯤 되니 과장되고 자극적인 표현이 남발되고 말하는 톤도 점차 강하고 독해지는 사회의 변화를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비단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웬만한 목소리와 주장으로는 좀처럼 주목받기 어려운 상황은 작금의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웃지 못할 현실이다.

사물의 한 면만 강조하는 풍조가 자리 잡으면서 균형 있는 주장을 펴는 사람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다기하게 얽혀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보다 한쪽만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사물의 일면만 강조하고 편파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늘어만 간다. 이런 시류에는 기성 언론에 더하여 뉴미디어가 난립하면서 한층 경쟁적으로 변한 매체 환경이 한몫하고 있다. 온라인 매체는 물론이고 기성 언론마저 균형 있는 보도를 포기하고 정파적 이해를 강변하는 자극적인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강한 주장에 열광하는 청중을 우선하며 편승하는 이런 시류는 우리 사회를 갈등과 대립으로 내몰고 있다.

자기주장만 옳다고 우기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윽박지르는 말은 분열의 언사에 불과하다. 이런 언사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존중하거나 타인과 공존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일부 온라인 매체가 자극적인 소재로 인기를 끌면서 그런 식의 성공 사례에 경도된 정치인이 나타나고 심지어 고위 공직자 가운데 비슷한 사례가 등장하는 현실은 개탄스럽다. 유력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가 소리치며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는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도 않다. 지위를 빌려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는 일은 위세를 앞세운 우격다짐이다. 그것이 유력 정치인이거나 고위 공직자의 말이라면 권력을 남용한 폭력이다. 상대는 마지못해 겉으로만 듣는 시늉을 한다.

본디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은 불통이 아닌 소통의 수단이다.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은 일방적인 강요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상호작용이어야 한다. 더 큰 목소리로 말한다고 더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큰 소리는 단지 소음일 뿐이다. 남들보다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위세를 과시하려 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의 존재감까지 커지는 것은 아니다. 무리 지어 파당을 이루고 자기편이 듣기 좋은 말만 일삼으면 사회 전체로는 분열과 갈등이 확산할 개연성이 크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소통하려는 의지와 태도, 상대를 존중하는 대화의 형식 그리고 가장 본질적으로는 말하는 내용 자체이다.

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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