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교육] 순수한 앎의 빛

  •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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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7  |  수정 2023-07-17 08:04  |  발행일 2023-07-17 제13면

[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교육] 순수한 앎의 빛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등 디지털 현실이 점차 아날로그 현실을 대체하고 있다. 가상현실이란 컴퓨터로 어떤 환경이나 상황을 만들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마치 실제 주변 상황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처럼 만들어 주는 인간-컴퓨터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말한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버추얼'은 가짜라는 의미가 아니라 거의 현실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가상현실은 3단계를 거쳐 발전하고 있다. 제1세대 가상현실은 4D 스크린을 통한 가상현실이고, 제2세대 가상현실은 HMD(Head mounted Display), 즉 안경처럼 착용하는 헬멧 타입을 통한 가상현실이다. 최근 애플이 개발한 비전프로 역시 이에 속한다. 제3세대 가상현실은 뇌파 연동을 통한 가상현실로,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두뇌에 직접 가상현실의의 정보를 송수신하는 방식이다.

인공지능이 가상현실과 결합함으로써 개인의 욕망을 최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나의 욕망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그 욕망을 최적으로 실현해 주는 가상현실을 제공해 주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 그러나 매트릭스처럼 프레임을 설계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대다수가 그 프레임에 갇혀 게임 중독자가 되고, 가상현실의 폐인이 되어 무력하게 시간을 낭비한다면 그곳은 지옥과 다름없지 않을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아날로그 세상은 과연 진짜 현실일까? 우리의 뇌는 진화의 과정에서 99.9%를 차지하는 구석기 시대에 형성되었다. 우리의 뇌가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수렵 채취 시기에 예측하는 기능이 생존에 가장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대 뇌과학은 우리의 생각, 지각, 감각 등은 모두 뇌를 통해 만들어진 임의적인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현대물리학은 궁극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양자 파동밖에 없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아날로그 현실이라고 여기는 것 역시 가상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루퍼트 스파이라는 '순수한 앎의 빛'에서 우리의 생각, 감각, 지각이라는 경험을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오직 그런 경험을 안다는 것만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경험을 안다는 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우리 마음은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고 생각은 늘 움직인다. 생각이 멈추면 마음도 멈춘다. 마음이라는 관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각인데 우리가 마음을 직접 탐구해서 발견하는 모든 것은 오직 일어나는 생각이나 이미지뿐이다. 그것이 일어나는 순수한 앎의 장은 마치 양자 파동과 같다. 스스로 진동하여 생각함의 형태로 변형되면 마음이 되고, 감각함의 형태로 변형되면 몸이 되고, 지각함의 형태로 변형되면 세계가 된다.

'요가 수트라'에서는 분리된 자아인 에고(ego)의 시간을 '수평적 시간'이라고 하고 모두가 물밑에서 육지로 연결된 셀프(Self)의 시간을 '수직적 시간'이라고 하였다. 오쇼 라즈니쉬는 예수 십자가의 의미는 수평적 시간을 수직적 시간으로 바꾸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수평적 시간에서 수직적 시간으로 바꾸는 것은 삶에 있어서 완벽함이 아니라 전체성을 추구하라는 것과 같다. 전체성과 완벽함은 어떻게 다른가? 완벽함은 수평선에서 움직인다. 왜냐하면 완벽함은 지금 여기가 아니라 미래 언젠가 존재할 것인 반면, 전체성은 이 순간,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생각으로 이루어진 분리된 자아의 집은 시간이며, 순수한 앎의 집은 지금이다. 그러므로 생각과 앎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 지금에서 나와 2초만 과거나 미래로 들어가려고 시도해 보라. 거기로 갈 수 있는가? 지금을 떠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느껴 보라.

잠시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빈 종이에 적어본다. 1분간 떠오르는 생각을 적은 후에 눈을 뜨고 내가 1분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본다. 우리의 생각은 대부분 장차 해야 할 일에 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떠오르는 생각을 종이에 적을 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떠오르는 생각과 별도로 그것을 순간순간 지켜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지켜보는 마음이 스파이라가 말하는 순수한 앎의 빛이다. 떠오르는 생각은 영화 스크린에 나타나는 온갖 영상들과 같으며 그 생각을 지켜보는 마음은 스크린과 같다.

스파이라는 우리의 삶의 가능성은 두 가지뿐이라고 말한다. 한 가지는 생각, 감각, 지각 등 스크린에 비친 영상을 분명한 현실이라고 믿으며, 나는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태어나 움직이고, 변화하고, 성장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분리된 존재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일이다. 또 한 가지는 자신을 스크린에 비치는 동영상이 아니라 그 동영상의 바탕이 되는 스크린으로 여기며 늘 현존하는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다.

〈대구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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