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흑과 백 그리고 회색

  •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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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2  |  수정 2023-07-12 06:54  |  발행일 2023-07-12 제26면
진리는 흑백 양극단이 아닌

'옳다' 하고 '그르다' 하는

그 가운데 어디쯤에 있어

주장, 첨예하게 대립될수록

해답은 회색 어딘가에 있다

[시선과 창] 흑과 백 그리고 회색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1636년이 저물어가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 속에 청나라에 포위된 남한산성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항복할 것인가 결사 항전할 것인가? 주화파 최명길은 말한다. 승산 없는 싸움에 모든 것을 걸기보다는 우선 항복하여 백성의 생명과 종묘사직을 지킨 다음 후일을 도모하자고. 이에 대해 주전파 김상헌은 모두가 죽을 각오로 싸운다면 오히려 살길이 있을지 모르지만 적에게 한번 몸을 굽히면 영원히 오랑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강경론을 편다. 당면한 현실의 타개를 위해서는 주화파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피했으나 명분 면에서는 척화파의 논리 또한 배척하기 어렵다.

역사 시간에 우리는 배웠다. 당시에는 주화파의 의견이 채택되어 나라가 유지되고 백성들이 어육이 되는 상황을 면했지만 역사의 승자는 당위를 강조한 척화파들이었다. 눈앞의 전란이 수습되고 다시 평화가 찾아오자 위기 타개의 공로는 간데없이 선명성을 내세운 명분론자들이 조정의 주축이 되었다. 김상헌의 후손들은 할아버지의 절개를 앞세우고 안동 김씨 60년 세도를 이어갔다. 이미 비틀대던 조선은 그 사이 회복하지 못할 나락으로 떨어지고 결국에는 나라를 잃고 말았다.

흑백논리에 바탕을 둔 이론의 전개는 명쾌하다. 흑백논리에는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구분도 없다. 명분과 지향점이 분명한 까닭에 설득력이 있고 쉬 반론을 제기하기도 어렵다. 극우나 극좌로 치우치면 그 논리는 오히려 더욱 명쾌해진다. 논리와 신념에 바탕을 둔 자기 확신은 강한 추진력의 근간이 된다. 삶 자체가 그 명분에 헌신한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조국광복이라는 목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의 사상과 행동을 일반인들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현실은 흑백에 바탕을 둔 극단적인 논리를 기준으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세상은 학문적으로 또는 머릿속에 정리된 이론처럼 단순하지도 않거니와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게 되면 너무나 많은 변수와 이해관계자가 있어 어느 정도의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자칫 나의 이념과 이상을 극단으로 밀고 가다 보면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는 타파해야 할 적으로 규정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피가 피를 부르는 보복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 자기 확신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세속의 욕심과 결합하면 초기의 순수함은 사라지고 자칫 내로남불의 행태로 변질되기도 한다.

이에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극단을 피하기 위해 중용을 강조해 왔다. 중용은 삶의 자세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며 도리에 맞아 변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단순히 상반된 주장의 가운데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색깔로는 흑과 백이 아닌 회색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중용 또는 회색이란 우유부단하고 어정쩡함이나 적당히 타협함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자칫 중용에 근거한 대안을 제기했다가는 비겁한 자, 변절자나 비판적 의미에서의 회색분자로 몰리기 십상이다.

진리는 흑과 백의 양극단에 있지 않다. 참되고 바른 견해나 현실에 대한 해법은 사람들이 옳다 하고 그르다 하는 그 가운데 어디쯤에 있다. 가치관과 사안에 따라 색깔의 옅고 짙음에 다소간 차이는 있겠지만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분명히 회색 어딘가에 있다.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일수록, 사안이 복잡다단할수록, 이해당사자가 많을수록 더욱 그렇다.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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