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선수가 포기하지 않으면 팬도 포기하지 않는다

  • 홍석천 체육주간부장 겸 NFT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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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2  |  수정 2023-07-12 06:54  |  발행일 2023-07-12 제26면
2010년대 왕조 이후 몰락에

'10위 흑역사' 삼성라이온즈

최선 다하는 모습에 팬은 감동

20년 우승 못해도 응원 지속

'어게인 2002'로 새 도약을

[동대구로에서] 선수가 포기하지 않으면 팬도 포기하지 않는다
홍석천 (체육주간부장 겸 NFT 팀장)

PC게임에 빠진 채 한창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막내아들이 그나마 자주 하는 야외활동이 친구들과 라팍으로 삼성 라이온즈 경기를 보러 가는 것이다. 좋아하는 선수 유니폼을 입고, 파울볼이라도 하나 잡으려 아빠 글러브를 들고 신난 채 집을 나서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경기를 보러 가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더니 경기 결과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아빠랑 야구장 갈까?"라는 말에 "아직도 야구에 관심 있어요?"라는 말로 슬픈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 버렸다.

그 순간 40년 삼성 라이온즈 팬으로 살아온 필자의 추억과 경험이 오버랩됐다.

필자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삼성의 골수팬이었다. 삼성은 프로야구의 강자로 군림해 왔지만 20년간 한 번도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다. 정규시즌은 잘했지만 포스트시즌에만 나가면 번번이 고개를 숙였다.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무패' 신화와 대조를 이루며 라이온즈 팬들은 거의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이런 삼성의 한국시리즈 악몽을 끝낸 것은 대한민국이 월드컵의 해로 기억하는 2002년이다. 한·일월드컵이 열렸고, 한국 축구가 사상 초유의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달성한 그해. 또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남자농구가 중국을 꺾고 20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은 그해. 삼성에게는 지긋지긋한 한국시리즈 20년 무관의 한을 청산하고, 대구구장에 처음으로 우승축포가 울려 퍼진 해가 됐다. 필자를 포함한 삼성 팬들에게 당시의 감동은 월드컵 4강신화에 못지않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2002년 이후 삼성은 수많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며 '왕조'라는 영예도 누리는 전성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삼성의 현재 순위는 10위다. 왕조의 유산은 거의 사라졌다. 현재 삼성에는 철학과 팀 컬러가 실종됐다는 팬들의 비판이 거세다. 이만수, 장효조, 양준혁, 마해영, 이승엽, 심정수, 최형우 등이 보여줬던 선 굵고 호쾌한 공격야구는 보기 어렵다. 철벽 계투진이나 톱니바퀴 물리듯 돌아가던 그물망 수비도 옛말이 됐다. 선수를 길러내 활용하는 '화수분 야구'로 부르기도 어중간하다. 삼성의 흑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보인다.

프로야구에서 한화 이글스 팬들은 '보살'로 불린다. 프로야구 '흑역사' 기록 대부분을 가진 한화를 응원하는 팬들은 보살의 인내심을 갖고 있다는 웃픈 얘기다.

올해 삼성의 팬들도 한화 팬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할 것이다. 한국시리즈 우승 흑역사인 2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동안 고난의 시기를 겪을지 모른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 구단과 코칭스태프, 선수들은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팬들이 창단 후 20년간 우승을 못 해도 응원을 거두지 않았던 것은 구단이나 선수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팬들은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이승엽 선수가 동점 홈런을 치고, 마해영 선수가 끝내기 홈런을 친 것도 포기하지 않는 승리의 열망으로 받아들인다.

삼성 팬들이 지금 기대하는 것도 이런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진 '삼성 라이온즈 스타일' 말이다. 호쾌한 공격야구, 지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바라는 것이다. 20년간 헤맸던 깜깜한 터널을 헤쳐 나온 경험이 있는 삼성이기에 이번 위기도 어렵지 않게 이겨낼 것을 기대해 본다.

홍석천 (체육주간부장 겸 NFT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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