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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영진전문대 호텔항공관광과 교수) |
한국에는 소주, 유럽에는 와인, 독일에는 맥주가 있듯이 일본에는 사케가 있다. 사케는 특정한 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어로 '술' 그 자체를 의미하는 일반 명사였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사케'는 일본식 청주를 가리키는 단어가 되며 지금의 사케의 의미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니혼슈(일본주)나 세이슈(청주)로 더욱 분류되어 있다. 청주는 술의 한 종류로, 누룩으로 곡물을 당화, 발효시켜 탁주를 담근 후에 용수를 이용해 자연적으로 침전시키거나, 고운 천으로 술지게미를 걸러낸 맑은 술이다. 대한민국 주세법상 청주는 사케를 의미한다. 주세법에 따르면 청주, 즉 사케로 인정받으려면 곡물은 쌀만을 이용해야 하며 누룩은 1% 미만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다른 곡물을 조금이라도 사용하거나 누룩이 1% 이상 들어가면 약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사케의 역사에는 한반도가 함께한다. 사케는 일본에서 서기 400년경에 처음으로 '스미사케'라는 문헌으로 발견되었다. 원래 일본의 주조법은 한반도의 영향을 크게 받아 예로부터 교토의 신사인 마스노오다이샤(松野大代)는 술의 신이자 한반도에서 건너온 하타씨를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삼국시대에 백제 사람이 건너와 새로운 방법으로 술을 빚는 방법을 전해주었으며, 그를 '주신'이나 '새 술의 창시자'로 기록하였다. 처음에 사케는 일본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도쿠가와 시대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청주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현재 일본에는 약 2천여 개의 청주 브랜드가 있으며, 전국적으로 청주의 종류는 수만 가지에 이른다. 각 지방에서는 그 지방 특유의 고유한 명칭과 특징을 살린 다양한 '지자케(地酒, 지역술)'가 있다.
사케의 맛은 크게 스위트(sweet)한 맛과 드라이(dry)한 맛으로 나뉜다. 스위트한 맛은 아마구치(甘口), 드라이한 맛은 가라구치(辛口)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신(辛)이라는 글자를 '맵다'와 '드라이하다'는 의미 모두로 사용한다. 스위트 사케인지, 드라이 사케인지는 사케의 라벨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 술이 달수록 당분이 많아 무겁기 때문에 당도를 측정하는 니혼슈도계가 위로 떠오르며 (-)를 가리킨다. 반대로 당분이 적은 드라이 사케는 가볍기 때문에 니혼슈도계는 아래로 가라앉아 (+)를 가리킨다.
사케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보디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케의 보디감 구분은 사케의 유기산(有機酸) 함량의 차이에서 온다. 묵직할수록, 즉 full body일 경우에는 농순(濃醇, 노쥰)이라 하고 가벼울수록 담려(淡麗, 탄레이)라고 한다. 사케의 보디감은 산도(酸度)로 표현을 한다. 사케의 산도는 평균 1.3~1.5 정도이며, 1.3 이하면 담려, 1.5 이상이면 농순이라고 한다.
일본인은 우리와 비슷한 듯 다른 술 문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인의 술자리에서는 처음에 맥주를 가볍게 마시고 나서 각자가 선호하는 술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각자가 선호하는 술을 고르기 때문에 친한 사이어도 자신이 마신 것은 따로 계산하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혼자 계산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상대방의 빈 잔을 두고 그냥 방치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무례이자 무관심한 행위로 간주된다. 따라서 손님의 잔이 1/3 이하로 줄어들었는데도 주인이 술을 추가로 권하지 않으면 자리를 끝내고자 하는 의사 표시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사케 종류는 세이슈(청주)이다. 세이슈는 '정제된 사케'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변형된 사케들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사케이다. 발효, 여과, 저온 살균 및 희석의 과정을 통해 알코올 함량의 균형을 맞추고, 풍미를 부드럽게 한 것이 특징인 세이슈는 큰 호불호 없이 인기가 좋다.
혼죠조는 세이슈에서 더욱 양조된 사케를 일컫는다. 쌀을 깎아낸 정도를 뜻하는 정미율은 70% 정도이다. 사케에서 정미율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데, 쌀의 전분 중심부가 좋은 사케를 만드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정미율이 70%인 경우에는 100%의 쌀 중 70%의 쌀이 정미 후에 남았다는 뜻이므로 정미율의 숫자가 낮을수록 고급 사케이다.
긴조는 정미율이 60%이므로 혼죠조보다 고급 사케로 분류된다. 긴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긴조향으로 불리는 풍성한 과일향이 특징이다.
다이긴조는 최소 정미율 50%로 긴조보다도 고급 사케이다. 따라서 보통 한정적인 수량과 비싼 가격이 특징이다.
준마이(純米)의 특징은 양조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의 세이슈에는 풍미를 위한 양조 알코올이 들어가지만, 준마이는 물, 쌀, 누룩만이 들어간다. 그래서 드라이한 풍미가 강하며, 산미가 강하다.
사케는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차가운 맥주나 냉장고에서 막 꺼낸 소주와 같이 먹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레이슈(冷酒)는 냉장고 등에서 차게 한 사케를 말한다. 다이긴조나 긴조슈 등 깔끔한 맛의 사케가 잘 어울린다. 20~26℃의 상온에서 보관한 사케는 본래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준마이나 준마이긴조 등 깔끔한 사케가 잘 어울린다. 사케를 데우는 온도에 따라서도 구분지을 수 있다. 30℃정도는 히나타칸, 35℃ 정도는 히토하다칸, 40℃ 정도는 누루칸, 45℃ 정도는 조칸이다. 누루칸의 경우에는 사케의 향이 잘 느껴지는 준마이긴조가 어울린다. 아쓰칸은 50℃까지 데운 사케를 말한다. 감칠맛과 산미가 많아 맛이 확실한 사케가 잘 어울린다.
일본의 1위 사케라고 불리는 닷사이 사케는 '닷사이 23' '닷사이 39' '닷사이 45' 등의 시리즈로 유명하다. 닷사이 시리즈의 특징은 이름 뒤에 붙는 숫자이다. 숫자는 정미율을 나타내며,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숫자가 작을수록 그 가치가 크다. '닷사이 23'의 경우에는 정미율을 23%까지 낮추었지만 압착이 아닌 원심분리기로 정미하므로 맛과 향이 유지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금쌀이라고 불리는 고급 쌀인 야마다니시키만을 이용하므로 그 풍미가 대단하다는 평을 받는다.
영진전문대 호텔항공관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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