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대구기독교 성지 제일교회 탐방기…선교와 개화 소명 위에 우뚝 선 대구 최초의 교회

  • 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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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21 08:25  |  수정 2023-07-21 08:26  |  발행일 2023-07-21 제38면
1893년 설립 120여년간 의료·교육사업
대구경북 최초 서양 의료기관 제중원
계성·신명학교 등 지역 근대화 이바지
1933년 준공 예배당이 옛 제일교회 건물
탄생 100주년 기념관 부속 '이스트힐'
지역민·교인 소통공간役 카페로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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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제일교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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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예배당, 옛 제일교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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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제일교회 머릿돌과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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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제일교회 경건한 내부.

창밖의 오후는 나른했다. 이스트힐(East hill The cafe) 창문으로 햇살이 빗살무늬로 떨어졌다. 빛이 머무는 바닥은 마치 알의 흰자위처럼 하얗고, 거기에는 창세기의 말씀이 살아 있었다. 창세기(1:1~3)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러니까 저 빛은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시자 창조물이다. 홀 안은 그 어떤 결핍의 너울 같은 공허가 흐르고 있었다. 어디에 있더라도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불안의 검은 나비가 저 허공으로 훨훨 날아다닌다. 그건 원죄(原罪)다. 인류는 원죄의 등짐을 지고, 끝 간 데 없이 걸어가다,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교리가 기독교다. 그 엄격하신 하나님의 계율과 조금도 용서 없는 심판 앞에 인간은 항상 두렵고 죄의식에 살며, 소돔과 고모라 같은 비극의 최후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류의 원죄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탄생하셨다. 그날이 크리스마스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스트힐로 다시 눈길을 돌리자.

제일교회 탄생 100주년 기념관 부속, 이스트힐은 동쪽 언덕이다. 한국 사람들이 숭늉보다 더 마시는 커피와 우유를 저가(低價)로 마실 수 있는 카페이다. 맑은 눈동자에 새벽 별을 담고 있는, 이스트힐의 화요일 캐릭터, 바리스타 김정아님이 뽑아내는 커피 맛에 혀가 탱고를 춘다. 근데 이스트힐은 '에덴의 동쪽'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왠지 꼭 그럴 거라는 느낌이 정수리를 타고 내린다. '에덴의 동쪽'은 존 언스트 스타인벡의 미국을 대표하는 명작이다. 에덴의 동쪽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原罪) 의식. 카인과 아벨의 첨예한 갈등 구조를 모델로 하였다. 이 작품에는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등 인생의 대극적인 양면성이 마치 실험극같이 드러나 있다. 존 스타인벡은 에덴의 동쪽을 통해 인간이 언제까지 원죄의 굴레를 목에 걸고 살아야 하는지, 한편으로 인간 스스로 원죄를 벗어나 해방될 수 없는지 등에 근원적인 질문을 지치지 않고 던졌다. 그리고 그 해답으로 인간의 자각(自覺), 관용(寬容), 인간애(人間愛), 자유의지(自由意志) 등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곤 했다. 말하자면 누구나 인간은 카인과 칼처럼 원죄를 코뚜레로 하고 살기 때문에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의 대극성 사이에서 헤매거나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이 두 길을 선택하는 의지는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신(神)의 명령이나 운명의 당위(當爲), 즉 마땅히 그렇게 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다. 인간의 주체는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그 의지와 노력으로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다. 비록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인간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면 가능성·희망·존엄성이 은연 중에 드러나고, 그 위대성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존 스타인벡의 유언(遺言)적인 결론은 아닐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는 인간의 마지막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일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한잔의 커피를 마신 후, 제일교회 본당으로 가기 위해 자리를 털고 사잇문으로 간다. 이스트힐 사잇문 가장자리에 성경 구절을 적어 놓은 이동식 칠판이 있어 멈춰서서 본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 11:25~26) 정말 우레 같은 선언이다. 하나님이시거나 그의 아들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하셨다. 부활과 십자가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이다. 부활과 십자가를 믿으면, 진실로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은 없었다. 그 말은 과거는 물론 미래의 어떠한 사람들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함에도 예수는 히브리력 14일 유월절에 최후의 만찬을 하고, 그날 밤에 예수를 미워하던 유대인 제사장 로마군에 잡혀 조롱과 고난을 받는다. 다음 날 15일 형언 할 수 없는 멸시와 고통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 지고 온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사망하신다. 다음날 안식일이 지나고 죽은 지 삼 일째 되는 날 새벽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시게 된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죽음을 다스리고,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새 생명의 문을 열어 주셨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수 있었던 것은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죄는 인간을 완벽하게 죽인다.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턱없이 차단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므로 그 무서운 죽음에서 승리하여 부활하신 것이다. 그래서 부활을 말할 수 있는 종교는 그리스도교가 유일하다. 우리가 그분, 예수를 믿는 순간 그분에게 접붙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모든 인간의 부활이 된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는 것이다. 탄생 100주년 기념관을 지나 제일교회 본당에 도착한다.

그럼 이 웅장하고 거룩한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고백하는 교회다. 그건 단지 죄를 고백하는 교회를 넘어 나와 우리의 신앙 고백에 관한 이야기다. 예수께서 진실로 이르신, 나를 믿으며 입으로 시인하는 자는 구원한다는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신앙 위에 세워졌다.

그럼 제일교회가 걸어온 역사적 발자취는 어떠한가. 대구경북지역 기독교 교회 설립은 1893년 4월 배위량(William M. Baird) 선교사가 경상도 북부 내륙지방 순회 전도 여행 중 대구를 방문하여 교리를 퍼트리면서 대구 제일교회가 시작되었다. 이후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이곳에 교회를 세울 대지를 마련한 것이 1896년 1월이었다. 초대 목사인 안의와(James E. Adams) 선교사가 대구 제일교회에 부임한 것이 1897년 11월이었다. 안의와 목사는 1898년 대구읍성 남문 안 대구 제일 예배당에서 김재수, 서자명, 정완식 등 초기 교인을 중심으로 사랑과 복음의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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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그리고 1908년 12월 단층 140평의 두 번째 예배당을 건축하였으며, 1933년 9월에는 2층 연건평 448평의 세 번째 예배당(현 대구기독교 역사관)을 준공하였다. 대구 제일교회는 120여 년 동안 선교와 의료, 교육 사업을 펼쳐 대구 사회에 믿음과 사랑을 전도했다. 이를테면, 교회를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는 1899년 12월에 대구경북 지방 최초의 서양 의료 기관인 제중원(濟衆院: 모든 사람을 구제함)이 교회 구내에 설립되었다. 그 후 제중원은 1906년 동산동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으며, 1911년 동산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현재까지 질병 치료(診療)를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제일교회는 교회 구역 안에 1900년 대남소학교, 1906년 계성학교, 1907년 신명학교 등 교육기관인 학교를 개교, 지역의 인재 양성과 교육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지역의 여러 교회를 개척하거나 분립하여 대구경북지역 모(母) 교회의 역할을 하면서 기독교 선교의 공로가 지대했다. 솔직히 복음의 황무지였던 영남에, 대구 제일교회가 이 지역의 의료·교육·문화 선교의 마중물이 되어 끼친 근대화의 영향을, 우리는 뼈에 새겨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위대한 업적은 오직 예수님을 믿고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 가능했다. 교회 내부를 관람하는데, 좌벽에 성경 구절이 있다. '하늘에서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편 73:25) 하늘과 땅에서 나에게는 오로지 주밖에 없다는 것이 믿음이요, 그 믿음으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시작과 끝이 아닐까.

글=김찬일<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유판도 여행사진작가


☞문의: 대구제일교회 부설 대구기독교 역사관 (053)256-5441

☞내비 주소: 대구시 중구 남성로 23

☞트레킹 코스: 대구제일교회 기독교 역사관 - 이스트 힐 - 제일교회

☞인근의 볼거리: 중앙공원, 대구 약령시장, 계산성당, 동산병원, 신명고, 청라언덕, 은혜의 정원, 의료선교박물관, 이상화 생가, 진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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