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한일 양국 헌법이 처한 위기

  • 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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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7  |  수정 2023-07-17 07:06  |  발행일 2023-07-17 제25면

[단상지대] 한일 양국 헌법이 처한 위기
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오늘은 헌법 정신을 기리는 제헌절이다. 헌법은 근대국가의 조직·구성·운영에 관한 근본법이다. 특히 헌법 제1조는 특정 국가의 정체성을 표방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조문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서 평화롭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국가임을 표방하고 있다. 이 조문은 이따금 큰 울림을 주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상황은 대한민국이 헌법 제1조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지 제1조에 담긴 정체성을 견지하고 있는지 많은 의문을 자아낸다. 2023년 대한민국은 과연 '민국(民國·republic)', 즉 공공성에 기반한 민주공화국인가? 현재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에 없는 '자유'가 민주주의 앞자리를 슬그머니 새치기한 상황이다.

일본에는 헌법이 두 개 존재한다. 하나는 1889년에 공포된 '대일본제국헌법'이고 또 하나는 1946년에 공포된 '일본국헌법'이다. 대다수 일본인은 전자를 '천황'과 연결해 이미지화하고 후자를 '평화'와 연결해 이미지화하면서 일본이 1945년 이후 평화를 추구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완전히 탈바꿈했다는 자기이미지를 공유한다. 현대 일본 헌법이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것은 알다시피 제9조 때문이다. "국제분쟁해결 수단으로 전쟁과 무력행사는 영원히 포기한다. 이를 위해 육해공군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제9조는 분명 일본 헌법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큰 조항이다.

한편 일본 헌법 제9조는 착시효과도 낳는다. 의외로 일본 헌법이 제9조에 앞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무관심한 경우가 많은데 놀랍게도 제1조 주어는 천황이다. 일본 헌법은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그 지위는 주권을 지닌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라는 제1조를 시작으로 제8조까지가 모두 천황 관련 조항이다. 사실관계를 따지자면 천황을 일본의 상징으로 한다는 국민 총의를 확인하는 공식 절차는 없었다. 이 점에서 일본 헌법은 허구, 혹은 거짓에 기초한다. 일본 헌법은 제9조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린 암전 속에서 1945년 이전 헌법과 마찬가지로 천황 관련 조항을 제1조부터 배치한 것이다. 헌법에 비추어 보면 현대 일본의 자기이미지는 적지 않게 허상이다.

일본 헌법에서 유일하게 새로운 가치를 담은 제9조는 헌법 제정 이후 끊임없이 시달려 왔다. 그리고 일본 헌법 제9조의 삭제 혹은 무력화를 주도하는 세력은 1955년에 탄생해서 70년 가깝게 집권당으로 있는 자민당이다. 특정 정당이 70년 가깝게 정권을 장악하는 것도 기이하지만 그러한 집권당이 보편가치 측면에서 가장 의미가 큰 헌법 조항을 앞장서 위협하는 양상은 더욱 기이하다. 일본은 민주주의 정당정치에서 매우 기이한 국가이다.

올해 3월 이후 완벽히 동기화(synchronization)된 한일 정부 아래서 양국 헌법이 처한 위기 상황도 매우 흡사하다. 일본 헌법 제9조의 사문화(死文化)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형해화(形骸化)를 연상시킨다. 한일 양국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보편가치를 지향하는 두 조항은 현재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동기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 헌법 제9조를 끊임없이 무력화시키는 '자유민주주의 정당 자민당'과 코드를 맞출 것이 아니라 평화헌법의 가치를 지키고 지향하는, 그야말로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해야 한다.

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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