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10년 경력에도 버거웠던 아이…사랑·관심통해 달라진 모습 '감동'

  • 김일식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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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7  |  수정 2023-07-17 08:03  |  발행일 2023-07-17 제13면
'2023 다:행복한 대구교육 이야기' 공모전 수기 '은상'

■ ○○아, 넘어져도 괜찮아-김일식 성화중 교사

교사 10년 경력에도 버거웠던 아이…사랑·관심통해 달라진 모습 감동
A와 함께 동성로에 들러 찍은 사진.

교학상장(敎學相長)을 교직관으로 삼고 있는 10년 차 교사이다. 교직 생활 내내 담임을 해오고 있지만 2022년의 담임 생활은 잊을 수 없다. 너무 힘든 1년이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교사로서 많이 성장한 감사의 1년이라 생각한다.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교직생활에 긴장감을 준 A와 함께한 2022년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글로 적기로 하였다. 올해의 이 경험들이 남은 교직 생활의 큰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좌충우돌, 우여곡절 담임과 함께 힘겹게 성장하고 있는 A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흥분·소리 지르는 행동 반복…교사 팔에 피나도록 꼬집기도
전문가 상담통해 집중관리 후 안정됐지만 방학 후 다시 악화


지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 소원 들어주며 둘이서 추억 쌓기도
잘못된 행동 스스로 인지할 정도로 성장…학교 모두의 노력 성과


오랜만에 맡은 1학년 담임. 아이들 못지않게 떨리는 마음으로 1학년 교실에 들어갔다. 보통이면 눈을 멀뚱멀뚱 뜨고 앞문으로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마련인데 유독 한 아이가 큰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주었다. 첫 인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이야, 넌 첫 만남에 인사를 다 해주는구나? 내가 누군지 아니?'라는 물음에 '몰라요, 그냥 인사해요'라는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뭐지? 싶었지만 뭐 예의 바른아이구나!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것이 A와 나의 무미건조하지만 어찌 보면 강렬한 첫 만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년실에서 쉬고 있는데 체육 선생님의 다급한 전화가 왔다. '선생님, 빨리 강당으로 와주세요. A가 너무 흥분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 강당에서 여러 학급이 피구를 하다가 A가 공에 맞았는데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공을 던진 3학년 선배에게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아이를 달래고 교실에 앉혀있는데 아이의 흥분이 쉽게 가라앉혀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물도 먹이고 토닥여가며 진정시켰지만 A 못지않게 놀란 사람이 나와 체육 선생님이었다. 아이가 저렇게까지 흥분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달력을 보았을 때 아직 3월 달력이 채 넘어가기 전이었다.

3월 말에 틔운 걱정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랐다. 갑자기 교실에 들어와서 친구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일, 중간고사 첫날 한 친구와의 다툼으로 인해 심하게 몸을 긁는 정신 이상적 행동을 보이고, 교실 바닥에 대(大)자로 드러누워 시험을 방해한 일, 체육 시간 운동장을 뛰라는 체육 교사에게 '안 해, 난 하기 싫어'라고 하며 의도적으로 교사의 지시에 불이행하고 말을 듣지 않은 일 등 교직 생활을 하며 겪어 보지 못한 정말 다이내믹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나를 가장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A의 행동에 대해 상담하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아이의 보호자인 어머님께 전화와 카톡을 드렸으나, '네, 알겠습니다. 지도하겠습니다' 이상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전화도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일이 바쁘다며 전화를 계속 피하셨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두 달여가 지난 상황에서 가정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아이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때마침 내가 맡아서 운영하는 두드림 프로그램이 생각났고, 아이를 두드림 대상 학생으로 선정하여 관리하기로 하였다. 먼저 적용한 프로그램은 '외부 전문가 심리 정서 프로그램'이었다. 학교 위클래스에서 상담하기에는 아이의 우발적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또 위클래스 사정도 있는지라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또 '담임교사 상담프로그램'을 함께 병행하여 아이가 외부 전문가와 상담을 한 후 담임교사와 추가적인 상담을 통해 학교 생활에 적응은 어떤지? 어려움은 없는지?를 물어보는 등 A를 집중 관리하기로 했다.

2학기가 되었다. 방학이 선사해준 심신 안정은 2학기 시작과 동시에 불안과 걱정으로 바뀌었다. 1학기 말 진정시켜놓은 A의 정신상태가 방학 동안 배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1학기 때에는 학급 다툼 상황이 월 2~3회였다면, 2학기에 와서는 주 3~4회 간격으로 친구들과 다툼이 이어졌다. 학년실에 '선생님, A 또 흥분했어요'라고 찾아오는 아이들의 횟수는 늘어가고, 나는 어느덧 놀라기보다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교실로 뛰어가는 나의 뒷모습을 보며 학년실 선생님들의 위로의 인사가 많아질수록 나도 점점 지쳐갔다.

특히 8월 말 진로 시간에 제일 흥분한 A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하다. 급하게 이야기를 듣고 뛰어 내려간 교실에는 진로 선생님이 A를 잡고 있고 A가 손톱으로 진로 선생님의 팔을 꼬집고 있어서 선생님의 팔에는 피가 나고 있었다. A는 반쯤 눈이 돌아간 상태에서 친구들, 책상 등을 신경 쓰지 않고 발길질을 했다. 너무 처참한 모습에 나도 이성을 잃고 A를 번쩍 들고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소리 질렀다. '흥분하지마! 가만있어!' '싫어, 싫어'. 아기 같이 흥분을 가라앉지 못하는 A에게 더 따뜻하게 해주지 못하고 내 감정대로 지도한 내 모습을 지금 돌이켜보면 참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정된 A는 한 시간여를 울었다. 자기도 왜 그렇게까지 흥분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왜 자기가 그래야만 했는지…하염없이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내 마음속에도 뜨거운 눈물이 함께 흘렀다.

학교 차원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던 와중에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아이의 가정과 소통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아이의 주 양육자가 어머님보다는 외할머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외할머니 연락처를 물어 연락하였다. 여태의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니 오히려 외할머님은 죄송하다며, 초등학교 때까지 본인이 아이를 관리하였는데 엄마가 한 번 해보라고 놔두었더니 이렇게 되었다며, 앞으로 본인이 아이 관리를 하겠다고 하셨다.

이러한 응원에 힘입어 나는 더 힘을 쏟았다. 1학년 야영 직전 아이의 공격성으로 인해 위기관리위원회를 통해 야영 참여가 배제되었을 때 담임으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야영을 다녀오고 난 다음 주 아이에게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니 '동성로'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하여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둘이서 동성로에 가서 갖고 싶던 책도 사주고,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는 등 야영을 가지 못한 아이의 아쉬움을 잠시나마 달래주기도 했다.

외할머니, 의사 선생님과 같은 든든한 지원군 말고도 학교의 여러 선생님들께서도 함께 도와주셨다. 아이의 특이 사항을 선생님들과 공유하고 이상행동을 할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수업 시간에 다소 과한 행동을 할 때 교사가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 하는지에 대해 학년 부장님 협조 아래 여러 선생님께 연수(?)를 하였다. 이외에도 미술을 전공하신 교장 선생님께서는 지나갈 때마다 아이에게 그림을 보자고 하시며, 조언을 해주시고 습작을 할 수 있는 작은 노트와 펜을 선물해주셨다. 정말 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이 힘써야 하듯이. 아이를 위해 성화중학교 모든 구성원이 함께 노력했다.

9월 말 정신건강전문의 상담 이후 이렇다 할 큰 사건은 없었다. 전체의 노력을 아이도 알아주는 듯하여 너무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던 와중에 학년실에 오랜만에 아이들이 급하게 찾아왔다. '선생님, A가 체육 시간에 밖에 안 나가려고 해요.' 놀라지도 않았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교실로 내려가니 A가 교실 한중간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안 나가, 체육 안 할 거야.' 예전의 흥분하기 전 어린아이와 같은 말투로 버티고 있는 A에게 화도 났지만 의사 선생님께 배운 대처 방법대로 한번 안아주고 조심히 데리고 학년실로 왔다. 그리고 A에게 왜 그랬는지 이야기해볼래? 라고 물어보았다. 물론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갑자기 아이가 '선생님, 친구들이 저를 무시하는 것 같았어요. 오늘 약을 먹지 않았어요. 저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제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라고 했다. 아이가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부분에 대해 너무 놀라웠고 정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고마웠다. 아이는 그날 혼자 위클래스에서 20분여간 생각을 한 후 자기 발로 다시 체육 시간에 참여하였다. 1년여간 아이에게 쏟은 사랑과 정성 그리고 학교 구성원들, 외할머니의 노력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학기 초 아이가 가방의 자크가 고장 났다며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는 상황을 잘 몰라서 '집에 가서 수선해 달라고 해'라고 별생각 없이 말했는데 그때 이후로 아이는 빨간 여학생 가방을 메고 등교를 했다. 들어보니 누나가 메던 빨간 가방이라고 했다. 한 달여 가까이 메고 오던 아이를 보며 가방을 하나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게으른 탓에 새로운 가방을 사주지 못했고, 한 달여가 지나서 아이는 또 다른 헌 가방을 메고 등교를 했다. 아직까지 가방을 하나 선물해주지 못 한 게 미안한 마음으로 남아있다.

A는 결국 학교를 나서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전까지 '학교'라는 울타리가 아이에게 무의미한 존재가 아닌 사회적 성장을 돕고 내면으로는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과 관심, 그리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사회로 당당히 나아가는 그 순간까지 뒤에서 바라보는 그리고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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