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2023년 여름

  •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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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8  |  수정 2023-07-18 06:56  |  발행일 2023-07-18 제22면

[3040칼럼] 2023년 여름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너거 아버지 뭐하시노?'

영화 '친구'에서 담임선생 역을 맡은 배우 김광규의 명대사다. 그 후 여러 장르에서 심심찮게 회자되는 이 말은 경상도 미혼 남녀가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감을 부모에게 소개할 때 받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회 분위기가 사뭇 바뀐 요즘은 이렇게 면전에 대놓고 묻지는 않는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개인사에 대해 질문하는 일은 아직 흔하다. 필자 또한 지난해 대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결혼은 했는지, 자녀는 있는지, 출신학교는 어디인지, 전공은 뭘 했는지,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에서 연봉은 얼마 받았는지 취조를 당하곤 했다. 타지에서 온 이방인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호기심이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 관심과 호기심이 어려울 때 서로 걱정해주고 내 일처럼 도와주는 긴밀한 유대감이자 따뜻한 공동체 의식임을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중은행으로 눈부시게 도약하고 있는 대구은행은 과거 수차례 경영 위기를 겪었는데 그럴 때마다 대구 시민들이 내 일처럼 나서서 대구은행을 도왔다. 외환위기 직후 대구은행 주가가 5천원을 밑돌 때 대구 상공인들은 대구은행의 액면가 유상증자에 기꺼이 참여해 은행을 퇴출 수렁에서 건져 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당시 입사 동기 간에도 경쟁이 치열해서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거나 몸이 아파도 아픈 사실을 숨기고 경쟁사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오기 위한 보고서를 밤새 썼던 나는 이런 따뜻한 미담이 생경하다.

필자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병원 또한 대구 지역민들로부터 따스한 응원을 많이 받고 있다. 직장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며 근무하는 직원들을 본다. "우리 병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고 놀란 적도 있었는데 한번은 병원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병원이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취약한 점이 뭔지 토론하다가 "우리 병원이 어때서!"라며 얼굴이 새빨개져 발끈하는 직원도 있었다. 병원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장기간 근속하신 분들이 많은데 그만큼 조직을 사랑하는 마음도 남다르다. 큰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져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유난히 무덥고 긴 여름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7월 경제동향'에 의하면 한국 경제가 바닥을 지나고 있다고 한다. 제조업·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소상공인, 자영업자, 개인 모두가 힘든 시기다. 회사가 성장할 때는 신바람이라도 났는데 회사의 비전이 불안할 때는 출근하는 3040 직장인들의 발걸음도 무겁다.

기업은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피해갈 수 없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고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실천하는 것이 모름지기 리더가 해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고 역할일 것이다. 창업보다 어려운 게 수성이라고 하지만 창업보다 더 어려운 게 혁신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도 든다.

오늘은 이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올 것임을, 윤회(輪廻)의 자연법칙을 기억하며 출근길을 나선다.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 있다는 것'

나태주 시인의 시 '행복'도 읽어본다. '너거 아버지 뭐하시노?' 투박스러운 질문에 담긴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들을 돌아본다.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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