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칼럼] 관계지공원 벽시계

  • 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 |
  • 입력 2023-07-19  |  수정 2023-07-19 07:08  |  발행일 2023-07-19 제27면

[유영철 칼럼] 관계지공원 벽시계
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남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우리는 선행을 하곤 한다. 그런데 어쩌다 선행을 하다 과태료를 물 수도 있다. 내가 그러했다. 그런 마음을 안 냈다면 그로 인해 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행도 내가 했고, 과태료 물 일도 내가 하게 됐다. 선행과 과태료, 연결돼 있긴 하나 상관성은 없다. 후자는 도로교통법 위반행위의 결과였다. 이번 일로 과태료를 물었지만 그래도 선행은 남게 됐다.

지난 3월부터 아동안전지킴이 활동을 해온 나는 하굣길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통행을 안내하고 주변 공원·주택가 순찰을 하면서 아동안전을 챙기고 있다. 시니어일자리여서 무리한 일은 없는 편이다. 우리 2인1조가 맡은 구역은 범물동 범일초등, 범일초등과 접한 범물중 위 관계지공원, 삼주타운 옆 삼주어린이공원 등이다. 주 5일 같은 코스이다. 용지봉 아래 범물중 위 관계지공원에는 다양한 놀이기구와 운동기구가 비치돼 있고 쉼터인 작은 정자도 있다. 인근 주민이 많이 이용한다. 놀이터에서 어린이가 놀기도 한다. 정자에는 평상과 의자가 있고 가운데에는 큰 벽시계가 걸려 있다.

6월 초 어느 날 잘 가던 벽시계가 멈춰 있었다. 다음 날도 여전했다. 배터리를 구해서 갈아 끼웠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주민도 그렇게 했다고 했다. 대번에 시간을 볼 수 있었는데 멈춘 시계는 답답했다. 굳이 '아동안전'은 아니지만 그쪽으로 마음이 갔다. 고쳐 보겠다고 집에서 드라이버를 가져왔다. 떼어내고 시간을 맞춰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오는 길에 목련시장 시계방에 들러 시계값을 알아보기도 했다. '공원의 벽시계가 고장 나면 누가 챙기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런 것까지 구청이나 주민센터에 얘기할 필요 있겠나!' 싶기도 했다.

6월 중순 어느 날 정자에 앉아 고장 난 벽시계 안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만 놀라운 글자와 숫자를 발견했다. '보석의집 ○○○ T. 763-××××'. 전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보였다. 황금동 상가에 있는 시계보석점이었다. 주인은 "20여 년 전 공원이 생길 때 동장에게 기증한 시계인데, 아직도 있습니까?" 하면서 관심을 표했다. 마치는 길에 보자기에 싸서 들고 집에 가서 차에 싣고 찾아갔다. 차 댈 때가 없어 한 바퀴 돌다가 학생도 하교한 뒤라 잠깐 갔다 온다는 개념으로 인근 성동초등 부근에 주차했다.

시계점 주인은 기계부품이 있는지 구해보겠다고 했다. 다음 날 공원 정자 기둥에는 다른 벽시계가 하나 걸려 있었다. 인근 주민이 갖고 와 걸어둔 것 같았다. 이틀 뒤 연락이 왔다. 기계부품을 구해 교체하고 내부와 문자판도 닦았다고 했다. 다음 날 마치고 찾으러 갔을 때 주인은 미안해하며 부품값(2만원)만 달라길래 지불했다. 원래 있던 정자 안에 걸었다.

그런데 일주일 뒤였다. 외출했던 집사람이 스티커를 들고 들어왔다. 수성구청이 발급한 주·정차위반 과태료 통지서였다. CCTV에 찍힌 시간이 오후 3시54분·4시2분, 이중황색실선 위에 차량 번호판이 선명했다. "주·정차위반 과태료는 사람을 보고 물리지 않는구나. 잘못된 차를 보고 물리는구나. 기계와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제야 학교 앞 군데군데 'CCTV 무인단속구간'이 들어왔다. 20% 경감된 과태료(9만6천원)를 내고 와서 'CCTV도 운전자가 공원의 벽시계를 고치기 위해 세워둔 경우에는 예외로 해줄 수 없나?' 따위의 망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보던 집사람이 한마디 한다. "연구대상!"이라고. 오늘도 관계지공원 벽시계는 잘 가고 있었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