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대 박사의 '똑똑한 스마트시티·따뜻한 공동체'] 디지털 민주주의를 위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 김희대 대구TP 글로벌융합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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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21 08:57  |  수정 2023-07-21 08:58  |  발행일 2023-07-21 제21면
다수가 이기고 소수는 희생…민주주의 한계 '디지털 기술'로 극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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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대학의 시티사이언스랩은 디지털 참여시스템(DIPAS, Digital Participation System)으로 도시계획을 수행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 완벽한 치안유지시스템 프리크라임(Pre Crime)으로부터 보호받는 워싱턴DC를 보여준다. 프리크라임은 예지적 능력으로 범죄를 예견하고, 사건 발생 전 용의자들을 미리 체포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의 치명적인 오류는 아직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살인죄로 체포하는 난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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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간이 만든 시스템에는 항상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함을 추구하더라도 소수의 의견(마이너리티 리포트)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떻게 소수 의견을 놓치지 않으면서 참여적인 집단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까. 다행히 최근의 디지털 기술은 불완전한 인간이 집단지성을 만들며 참여적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오늘날 생성형 인공지능을 포함한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인해 인류는 위기의식과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위협에서부터, 특이점을 통과한 인공지능이 곧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는 괴담까지 널리 퍼져가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인간보다 더 잘 공감해주는 AI가 등장하더라도 '의미를 생성하고 교환하며 창의성을 만드는 인간 정체성'을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다. 지금이야말로 인류는 서로 협업하여 의미를 창출하고 공유하는 훈련을 통해 인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은 단순한 투표시스템에 의해 유지되는 대의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혁신하며 대규모의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플랫폼을 구현할 수 있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각 도시에 흩어져 있는 시민들이 지구적 어젠다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시빅 해커(Civic Hacker)로 불리는 활동가들은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신속하고 창의적으로 정부 시스템을 개선하기도 한다.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꿈꾸는 스마트시티 도시들은 아래와 같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기후중립, 회복력, 지속가능, 15분 도시 같은 지구적 의제에 참여하기

코로나19라는 팬데믹 현상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생태 지역(bio region)의 경계가 국경 안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국의 미세먼지는 이웃 나라의 과격한 산업 활동의 결과이며, 특정 지역이 겪는 열섬현상이 반대편 지구에서 벌어지는 지하수 남용과 무분별한 탄소배출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 인류는 지구라는 공간에서 인간, 자연, 동물이 서로 공생한다는 지구적 세계관을 가지고 지구시민으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시민이 선뜻 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행동이 지구적인 변화를 만든다는 느낌이 없고, 지구적 의제의 해결이 경제적 가치로 바로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도시의 리더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산업경제 발전을 중심으로 한 성장계획이나 하드웨어 인프라 건설을 통한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한다. 행정 지도자에게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후문제야 말로 새로운 시장기회다. 지금 세계를 주도하는 도시를 보자. UN이 요청하는 탄소중립도시 목표연도(2050)를 15년 앞당긴 헬싱키, 시민이 직접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 '시민 기후의회'를 창설한 바르셀로나, 2035년부터 모든 신규 경차에 대해 탄소배출 제로를 의무화하고 가스레인지 사용 금지법을 통과시킨 뉴욕, 직업·주거·문화에 높은 접근성을 만들기 위해 도시 자체를 재설계하고 있는 15분 도시 파리 등 경쟁력 있는 크고 작은 도시들이 글로벌 어젠다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늦은 출발을 하고 있다.


투표 통해 유지되는 대의 민주주의…다수 의견만 반영
디지털 기술로 더 많은 시민 의견 더 빨리 모을 수 있고
문제·해결책 누구나 볼 수 있는 '정보의 투명성'도 확대
각 도시에 흩어져 있는 시민들 지구적 어젠다 참여 가능



◆공공자산에 대한 새로운 사회계약

지금까지 도로, 도시공원, 도시숲, 공공주차장 등 공공재는 장기적인 수선이나 유지보수가 필요한 비용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블록체인과 웹3.0 기반의 스마트계약(smart contract)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공공재는 비용보다 편익의 주체로 역할한다.

예를 들어 빈집을 도시가 매입하여 주차장으로 개발하면 하드웨어 인프라에 투입하는 비용이다. 이는 인근 주택과 상가에 '더하기' 개념의 가치만 상승시킨다. 하지만 도시가 빈집을 매입한 후 공연, 교육, 텃밭, 도시에 한달살기, 공유주방 등 활동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빈집의 가치는 더하기에서 '곱하기' 개념이 된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러한 빈집 활용을 디지털로 예약하고 빈집에서 일어나는 활동성 단위를 평가지표(KPI)로 설정한 후 이해관계자들과 스마트계약을 맺으면 도시가치는 지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일대일이 아니라 참여자 간에 연쇄적으로 체결되는 스마트 계약의 특징으로 계약 주체의 활동이 한 단계 건널 때마다 시스템 전체의 편익을 '지수적'으로 증가시킨다. 스마트계약을 통해 시민들은 자신의 참여 활동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도시 재개발, 도시숲 조성, 도시 보안 등 도시 내 광범위한 영역에 스마트 계약을 적용할 수 있다. 대구시가 2019년 블룸버그 메이어스 챌린지에 도전한 실험 프로젝트가 바로 이러한 지수적 도시가치 상승을 위한 빈집활용 허가시스템 계획이었다. 대구는 이 챌린지에서 세계 50대 도시에 선정되었다.

◆디지털 기술 이용한 대규모 시민참여 플랫폼 구현

합리적이고 숙의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도시 의제에 공감하고 참여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대규모 시민참여와 의제논의의 투명성과 즉시성을 제공할 수 있다. 독일 함부르크의 하펜시티대학에 설립된 시티사이언스랩은 시민참여와 도시 디지털화라는 도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디지털 참여시스템(DIPAS)을 구축하였다. DIPAS는 지도 기반의 공공데이터 플랫폼으로 시민들의 의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시뮬레이션 분석 도구이다. 함부르크는 도시 공간, 교통, 환경 및 녹지계획,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 시리아 난민의 거주위치 문제 등에 DIPAS를 활용하여 시민의 의견을 수집하고 분석하며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렸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시민참여 플랫폼을 구현할 때 디지털 기술기반의 어두운 측면을 분명하게 고려해야 한다. 종종 흑백논리의 극단적인 대립상황으로 치닫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레이존을 형성하여 가교역할을 하는 디지털기술의 시도도 필요하다.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개개인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소수자가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현재의 디지털 환경은 자기 의견을 발산하는 다양한 통로를 제공하지만 역설적으로 공동체가 의견을 합의하거나 행동을 이끌어 내는 데 취약하다. 보다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시민 활동을 촉진하는 디지털 기술의 해결책은 시대적 요청이다.

<대구TP 글로벌융합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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