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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이른바 '킬러 문항'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 이후 몇 달 동안 한국 사회는 점점 교육의 본질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있다. 수능시험개편에서 시작하여 교육재정, 학교폭력, 교원양성, 교권확립 등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관성으로는 도무지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상황은 특히 공교육의 가치와 중요성에 관하여 한국 사회구성원들의 새로운 합의를 요구한다. 민주화 이전의 권위주의 교육론과 민주화 이후의 자유주의 교육론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
오랫동안 시민적 헌법교육에 애써온 사람으로서 나는 그 방향을 공화주의 교육론 쪽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습과 교육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인권과 함께 이들 모두가 발전시켜야 할 다른 가치들의 중요성을 고르게 강조하는 공화주의 교육론은 최근 들어 뜻있는 교육관계자들의 깊은 관심을 받고 있다. 여기서는 잠시 그 기초를 이루는 키워드들 몇 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공동선'이다. 한마디로 사회란 결코 각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공적 차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가꾸기 위해서는 공동선이라는 범주를 계속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선의 차원에서 공화주의 교육론은 종교, 전통, 국가의 이름으로 수행되어온 권위주의 교육론의 요체를 발전적으로 수용한다.
둘째는 '권력 균형'이다. 공화주의 교육론은 공적 차원이 아주 쉽게 권력 자원이 되어 권력의 오남용과 부패 그리고 사유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통찰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전반은 물론 교육체계의 구석구석까지 교사, 학생, 제3자들 사이에 세심한 권력 균형이 이루어져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덕성'이다. 공동선과 권력 균형은 결코 쉽게 달성하고 또 유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처럼 어려운 과제를 포기하지 않으려면, 덕성이라는 교육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덕성은 단지 지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서적, 영적 차원을 포괄하여 인격 전체를 아우르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실 공동선, 권력 균형, 덕성, 이 세 가지는 공화주의 정치철학이나 헌법이론에서 강조하는 내용이며, 그 기조는 교육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나는 학습과 교육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몇 가지 키워드들을 새삼 부각해 보고 싶다.
우선 '자발성'이다. 학습과 교육은 무엇보다 자발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특수한 영역이다. 배우기 싫어하는 학생이나 가르치기 싫어하는 선생에게서는 어떤 의미의 학습 또는 교육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화주의 교육론은 학습자와 피학습자 모두가 자발성을 가질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과정에 '재미'의 요소, '지적 긴장'의 요소, '팀워크'의 요소 등을 균형감 있게 운용해야 한다.
다음은 '리듬감'이다. 인간사의 다른 활동처럼 교육도 불균형적 현상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학습과정이란 그 자체가 기존 체계를 허무는 과정을 전제하므로 태생적으로 불균형을 감수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불균형을 하나의 일관성 속에 수렴할 수 있는 리듬감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로컬리티'이다. 학습과 교육은 학습자와 교육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므로 언제나 이들 사이에 발생하는 특수한 맥락이 작동한다. 이 특수한 맥락에 관한 지식과 대응책은 그 사람들 이외에는 알 수 없으므로 그와 같은 상황 자체에 대한 깊은 존중이 교육체계에 필수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모든 교육은 로컬리티에서 출발한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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