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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우리 정치도 부족주의에 종속됐다. 파벌이 '정치 문법'을 지배한다. 진영과 정당 깃발, 정파가 피아를 구분하는 잣대다. 여의도 정치부족 국민의힘 '친윤'과 민주당 '친명'은 공히 당내 일극이다. 거기다 강성 일색이어서 협치가 작동할 수 없는 구조다. 동질적 집단본능에 천착하고 우두머리에 맹종하는 부족주의는 정치를 퇴화하며 극단주의를 추동한다. 정치부족을 혁파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계엄·탄핵 정국에서 외부 세력과 야합한 양대 정치부족은 토네이도처럼 세력을 키웠다. 중화(中和)해야 할 계제에 더 극단으로 치달았다. '시민의 소리'가 분출되는 광장마저 선동과 소란, 비이성적 분노와 불협화음으로 넘쳐난다. 법치 조롱과 폭력 두둔의 야만이 스멀거린다. 극단 세력은 팬덤을 넘어 훌리건으로 강성화했다. 서울서부지법 폭동이 표변(豹變)의 증좌다.
#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엄정한 법치를 자존했던 보수주의, 개혁을 선도했던 진보주의가 함께 멸실했다. 정당은 극단에 포획됐다. 극단 세력에 순치하려는 듯 정치인들도 으레 극한의 언어를 구사한다. "국헌 문란 현행범 최상목 몸조심하라"(이재명 민주당 대표). "26일이 이재명 사망선고일이 될 것"(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민주주의의 위험 신호다.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가 왜 "극단적 광신도 집단이 범죄적 정치체제를 만든다"고 경고했을까.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의 '민주주의 보고서 2025'는 한국을 '자유민주주의'보다 한 단계 낮은 '선거민주주의' 국가로 분류했다. "2년 연속 독재화 진행 국가"라니. 망신이 따로 없다. 경화(硬化)된 정치 부족주의, '선출된 권력'에 대한 맹신이 한몫했을 법하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기에 민주적이고 정당하다는 착각만큼 위험한 게 없다. 독재와 전횡의 유혹에 빠질 수 있어서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선포와 민주당의 탄핵 폭주가 비근한 예다. "헌법재판소가 감히 '선출된 권력'을 심판하겠다는 거냐"는 극우 집회의 억설과 맥락이 같다.
# '제3의 길'이 해법=토니 블레어는 1997년부터 10년간 재임한 영국 두 번째 장수 총리다. 진보 정당의 블레어 총리는 좌파 도그마에서 벗어나 시장친화 정책을 펼치며 영국의 복지병을 치유했다. 좌파의 사회적 형평성과 우파의 경제효율 간 적절한 조화를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레어 정부의 정책 브레인이 런던정치경제대 교수 앤서니 기든스다.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다 반대하며 '제3의 길'이란 새로운 사회발전 모델을 제시했다.
국론 분열이 극심한 우리가 갈 길이 '제3의 길'이다. 실용주의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이 살짝 선보였던 국정 노선이기도 하다. 그의 어록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은 '제3의 길'의 정체성을 응축한 경구나 다름없다. 정치 부족주의를 완화하고 이념 극단, 정책 극단을 중화하는 해법으로도 '제3의 길'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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